신장절공 묘역 ( )

고려시대사
유적
문화재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무신 신숭겸의 묘.
이칭
약칭
신숭겸묘(申崇謙墓)
유적
건립 시기
고려 전기
관련 국가
고려
관련 인물
신숭겸(申崇謙), 태조(太祖)
면적
4,741㎡
소재지
강원도 춘천시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강원도
종목
시도기념물(1976년 6월 17일 지정)
소재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 816-1번지
내용 요약

신장절공묘역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무신 신숭겸의 묘이다. 공산전투에서 태조를 대신해 전사하자, 시신을 공이 거주하던 춘천에 안장하였다. 후백제군이 신숭겸의 머리를 잘라 돌아가자 왕건이 공의 두상을 만들게 하여 매장하였는데, 두상이 금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신숭겸의 충절과 절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정의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는 고려 전기 무신 신숭겸의 묘.
건립경위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 ?~927)은 공산동수(公山桐藪, 현재 대구 팔공산 부근)에서 후백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태조(太祖, 877~?)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장절(壯絶)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지묘사(智妙寺)를 창건하여 명복을 빌었다.

세조 때 강원도 관찰사 손순효(孫舜孝)가 작성한 「장절공유사(壯絶公遺事)」에 공산전투(公山戰鬪)에서 태조 대신 싸우다가 전사한 신숭겸을 왕건으로 알고 후백제군이 머리를 잘라 돌아가자, 태조가 목수에게 두상(頭像)을 만들게 하여 장사 지내고 주1을 세웠다고 전한다.

전라도 곡성 출신으로 알려진 신숭겸의 묘가 춘천에 조성된 경위는 분명치 않은데, 당시 광해주(光海州, 현재 춘천)로 옮겨 살던 중 전사하여 그의 거주지에 안장되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신숭겸 묘는 봉분이 3개가 있는데, 장절공신도비(壯節公神道碑)의 비문에 의하면 두상을 금(金)으로 만들어 몸체와 합하여 안장하였기 때문에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개의 봉분을 조성했다고 하고 혹은 부인 묘라고도 한다. 신장절공묘역(申壯節公墓域)은 전국적인 명당으로 알려져 있는데, 도선국사가 태조를 위해 잡아 준 터라고 전해진다.

변천

신장절공묘역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 816-1번지에 있다.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묘역에 대한 지속적인 정비가 이루어졌다. 17~18세기 묘비를 새로 건립하고 재실을 중수하였으며, 1940년 퇴락한 묘사(墓舍)를 다시 고쳤다. 1960년대 재실과 비각을 건축 및 보수하고, 묘비도 새로 세웠다.

1970년대 묘역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조경 사업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77년 장절사(壯絶祠)를 중건하고 운보(雲甫) 주2이 그린 영정(影幀)을 봉안하였다. 1976년 6월 17일 강원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었다.

형태와 특징

신장절공묘역은 춘천시 북배산의 동남쪽 지맥 끝자락에 있다. 묘역은 아래에서 위로 완만하게 올라오다가 상부에 이르러 경사가 급해지면서 단(段)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위에 봉분이 자리한다. 봉분은 평면 원형이며 3기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봉분 앞쪽에는 1단의 주3이 있고, 그 아래에 2단의 석축 기단이 설치되어 있다.

가운데 봉분 앞에 묘비와 상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묘소 뒤편에는 ‘八’형으로 나지막한 담이 둘러 있다. 석축 기단과 담은 모두 현대에 조성된 것이다. 묘역 남서쪽 아래에 신숭겸의 영정을 봉안한 장절사와 장절공신도비, 재실인 상충재(尙忠齋)와 전사청(典祀廳) 등이 위치한다. 묘역 입구에는 기념관과 묘역 조경 기념비, 신숭겸 동상이 조성되어 있다.

금석문

묘역 아래에 서 있는 장절공신도비는 1805년(순조 5)에 건립되었다. 비문에는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는 과정과 공산전투와 신숭겸의 업적, 봉분이 여러 개인 까닭 등이 담겨 있다. 대제학겸영돈녕부사 주4이 짓고, 주5가 쓴 신도비는 학술 · 서예사적 가치를 인정 받아 2009년 5월 22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의의 및 평가

신장절공묘역은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면서 지금까지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신숭겸의 충절과 절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삼국사기(三國史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춘천시문화유산분포지도』(춘천시 · 강원문화재연구소, 2003)

논문

유재춘, 「춘천 소재 장절공 신숭겸유적지의 조성 경위와 특징」(『인문과학연구』 37,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4)
이해준, 「신숭겸의 원찰과 조선시대 분암」(『인문과학연구』 37,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4)

인터넷 자료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https://portal.nrich.go.kr)
주석
주1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던 법당. 궁중에 둔 것은 내불당 또는 내원당이라 하였다.    우리말샘

주2

화가(1914~2001). 호는 운보(雲甫). 아내인 화가 박내현과 결혼 후 함께 활동하였다. 김영기와 함께 ‘현대 동양화’ 운동에 앞장섰다. 어린 시절 청각을 잃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탁월한 작품들을 남겼다. 역사 위인들의 영정을 많이 그렸으며, 일만 원권 지폐에 세종 대왕을 그렸다.    우리말샘

주3

무덤 앞에 편평하게 만들어 놓은 장대석.    우리말샘

주4

조선 후기의 문신(1765~1832). 초명은 낙순(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 순조의 장인으로서, 대제학을 지냈으며,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죽화(竹畫)를 잘 그렸다. 저서에 ≪풍고집≫이 있다.    우리말샘

주5

조선 후기의 시인ㆍ서화가(1769~1845). 자는 한수(漢叟). 호는 자하(紫霞)ㆍ경수당(警修堂). 시(詩)ㆍ서(書)ㆍ화(畫)의 삼절(三絕)로 꼽혔으며, 후세의 시인들이 그의 작시법을 많이 본받았다.    우리말샘

집필자
이희인(인천시립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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