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압해(押海). 자는 사명(士明), 호는 아산(鵝山). 아버지는 정인남(丁仁男), 어머니는 성주형씨(星州邢氏) 장사랑(將仕郞) 형관(邢寬)의 딸이다. 8세에 『소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그 후 사서삼경(四書三經)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통독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임금이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파천했다는 소리를 듣고 화순(和順)의 조수성(曺守誠) 등의 격문에 호응하여 옥과현감(玉果縣監) 이흥발(李興浡)·순창군수(淳昌郡守) 최온(崔蘊)·전라감사(全羅監司) 이시방(李時昉) 등과 합병하여 북진하다가 청주(淸州)의 서평원(西平原)에 적을 만나 일전(一戰)을 하고 북진 중에 화의(和議)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향(歸鄕)하였다. 1645년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사진(仕進)을 단념하고 백아산(白鵝山)에 들어가 후생을 교육하며, 학문 연구에 힘썼다. 저서로는 『아산유고(鵝山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