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부(敬夫). 호는 덕곡(德谷). 함양 출신. 아버지는 조경(趙璥)이며, 어머니는 하동정씨(河東鄭氏)로 정복주(鄭復周)의 딸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1376년(우왕 2)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 특별히 저작랑(著作郎)에 제수되어 충하사(充賀使)로 원나라에 갔다가 그 곳 임금으로부터 자금어대(紫金魚袋)를 받고 귀국하였다.
그 뒤 향리에 퇴거할 때에는 임금이 침향궤(沈香几)를 보내면서 “너의 성품이 강직하기가 마치 이 물건과 흡사하므로 글씨를 새겨 주노라.”고 하였다. 1391년(공양왕 3) 부여감무를 역임하다가 이듬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교수정(敎授亭)을 짓고 두문불출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많은 영재를 배출시켰다.
그 교수정은 중수를 거듭하여 오면서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이색(李穡)·길재(吉再) 등과 도의로 친교를 맺고 성리학을 강론하였으며, 특히 길재와 함께 수창한 시는 유명하다. 두문동72현(杜門洞七十二賢) 중의 한 사람이며, 성종은 그의 높은 절의를 추모하여 유호인(兪好仁)으로 하여금 제문을 지어 제사지내게 하였다.
함양의 도곡서원(道谷書院)에 봉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덕곡집(德谷集)』 1권 1책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