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722년(경종 2)에 의겸(義謙) 등 9명의 화원이 제작했다. 정면 석가삼존불 입상을 화면에 부각시키고 남은 공간인 석가불의 두광 좌우에 각기 두 구의 불상 · 보살상 · 제자상을 조그맣게 그렸다. 이를 화면에 존명을 기입한 전라북도 내소사영산회괘불탱(1700년 작. 보물, 1997년 지정)과 비교한다면 석가불 입상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석가불의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주위로 다보불 · 아미타불, 관음보살 · 대세지보살, 가섭존자 · 아난존자가 배치되어 있다.
금강저(金剛杵: 악마를 깨뜨리는 무기) 문양으로 장식된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지닌 석가불은 윤곽선에 나발(螺髮: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 묘사된 머리에 중앙 계주(髻珠)가 있다. 그리고 큼직한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의 둥근 정상 계주에서 흰색 방광(放光)이 뻗어 올라 좌우로 퍼지고 있다.
원주형(圓柱形)의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인 석가불은 두 어깨를 덮은 통견(通肩: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다.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가슴에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양이다. 넓게 드러난 가슴에 강조된 만(卍)자 위로 범자(梵字)가 새겨져 있다. 각 존상의 눈과 목 아래에도 범자가 산재하였다.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봉오리의 줄기를 든 보현보살의 보관(寶冠)에는 한 쌍의 금제(金製)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불상보다 약간 작은 신체의 두 보살상은 얼굴이 작아져 신체의 비례가 적당하다. 투명한 흑사(黑絲)와 같은 원형 두광을 지니고 있다. 특히 문수보살 뒤로 석가불, 이 뒤에 보현보살이 서 있는 듯한 표현은 좁은 공간에 삼존불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것이다.
합장한 다보불과 아미타불, 화불(化佛)이 모셔진 보관 위로 흰 너울을 쓴 관음보살, 노비구(老比丘)인 가섭, 젊은 승려의 모습인 아난 등 각 존상이 구별된다.
석가삼존불 형식처럼 보이는 화면 구성, 건장한 체구, 이목구비가 적당한 부드러운 얼굴, 둥근 어깨선 등에서 표현 수법이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보색 대비, 보관과 목걸이, 금채(金彩), 옷 문양 등에서 화려함이 돋보인다. 간략한 형식의 영산회괘불탱은 천신 작 내소사괘불탱(1700년 작)부터 시작되어 지리산을 중심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유행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최고의 불화승(佛畵僧)이었던 의겸이 제작한 5점의 괘불탱(1722년 청곡사, 1728년 안국사, 1730년 운흥사, 1745년 다보사, 1749년 개암사) 가운데 초기작인 동시에 대표적인 작품이다.
괘불탱을 보관하는 목제(木製) 궤(櫃) 역시 장식이 섬세하다. 자물쇠 앞 바탕에는 연못의 두 오리와 두 동자상이 압출된 동판(銅版)을 붙였다. 이는 불토(佛土)의 연못을 묘사한 듯하다. 용두(龍頭)로 마무리된 들쇠 받침에는 두 줄의 연주문을 돌려 화문(花文: 꽃무늬)처럼 보이게 했다. 이외 거북이 장식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