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 세 점이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왕의 머리 부분에서 의자손수대경이, 왕의 다리 왼쪽 부근에서 방격규구신수경이 출토되었다. 또 왕비의 머리 부분에서 수대경이 출토되었다. 크기는 의자손수대경이 가장 크며 그다음으로 수대경, 방격규구신수경 순이다. 이들은 모두 동물무늬와 손잡이가 있다. 특히 방격규구신수문경에는 신선사상이 담긴 명문이 있다. 이 세 점의 청동거울은 지배층의 상징물이다. 제작 연대가 528년으로 확실하여 백제 청동거울의 제작 양상을 살필 수 있다.
의자손수대경은 지름이 23.2㎝로 가장 크다. 원형의 커다란 손잡이를 중심으로 9개의 반구형 돌기가 놓여있는데 그 사이에 ‘宜(의)’, ‘子(자)’, ‘孫(손)’ 세 글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해있고 바깥쪽에 동물무늬가 장식되어 의자손수대경이라 부른다. 손잡이 주변은 돌기 외에도 넓고 좁은 무문대와 얇은 선이 밀집한 집선문대가 있고 그 밖으로 네 개의 꽃잎 중앙에 놓여 있는 7개의 돌기가 균일하게 배치되었다. 돌기 주변은 문양이 얕고 희미해 정확한 무늬를 알 수 없으나 당초문과 같은 식물 문양이 상서로운 동물과 함께 채워져 있다. 동경의 가장 바깥 부분은 안쪽보다 한층 더 높고 넓고 편평한 면으로 제작되었는데, 삼각형의 거치문대와 당초문대가 둘러져있다. 손잡이에는 과거 사용하였던 가죽 끈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그 다음으로 크기가 큰 수대경은 동물문을 장식한 것으로, 크기는 작지만 앞서 본 의자손수대경의 손잡이, 돌기 장식, 한층 더 높고 편평한 외곽처리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중앙 반구형의 손잡이를 중심으로 9개의 작은 돌기가 원 안에 놓여 있고 그 밖으로 집선문과 무문대가 둘러져 있다. 주문양이 표현된 공간에도 이중의 원권 안에 7개의 돌기를 균등하게 배치하고 그 사이에 동물을 표현하였으나 의자손수대경처럼 정확한 세부표현은 파악하기 어렵다. 수평의 테두리에는 거치문과 당초문대가 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방격규구신수문경이다. 동일한 형태의 손잡이가 있고 그 주변을 방형으로 구획해 12개의 돌기를 두른 후 그 사이에 십이지(十二支)를 주조해 넣었다. 그 밖으로 TLV, 돌기, 네 마리의 사신(四神)을 표현하였으나 그 위로 세 마리의 동물과 인물이 부조되어 일부가 가려져 안보이는 상태이다. 인물은 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마치 사냥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 동경은 중국에서 크게 성행했던 한(漢)나라 동경을 모방한 후 그 위에 인물과 동물을 추가해 제작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바깥쪽에는 명문대가 둘러져 있는데 명문의 내용은, ‘상방에서 만든 아름다운 거울 정말 크게 좋다. 천상에는 신선이 있어 늙는 줄 모른다. 목마르면 맑은 샘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대추를 먹으니 목숨이 금석처럼 길도다(尙方佳竟 眞大好 上有仙人不知老 渴飮玉泉飢食棗壽如金石兮).’로 도가적인 신선사상이 담겨져 있다. 동경 테두리에는 두 줄의 물결로 이루어진 파상문과 삼각형의 거치문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점의 비해 문양의 세부가 명확하고 주조상태가 좋은 편이다.
세 점의 동경은 삼국시대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 관, 허리띠, 칼과 같은 금속공예품처럼 일상용품이라기보다는 지배층의 상징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의자손수대경은 일본 군마현[群馬縣] 다카사키시[高崎市] 간논산고분[觀音山古墳]에서 출토된 동경과 같은 틀에서 제작되어 주목되며, 일본 시가현[滋賀縣] 야스시[野洲市] 미카미야마시타고분[三上山下古墳]에서 출토된 두 점의 동경 중 한 점과도 같은 형식으로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일본 구마모토[熊本]의 에다후나야마고분[江田船山古墳]은 많은 백제계 유물이 출토되었던 유적인데, 출토된 유물 중 무령왕릉과 유사한 수대경(獸帶鏡)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세 점의 동경은 528년이라는 연대가 확실한 작품으로, 백제 동경의 제작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백제의 특색을 반영하면서도 삼국시대 동경뿐 아니라 일본 왜 사이의 대외교류 측면을 밝힐 수 있는 작품으로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