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정명식 가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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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정명식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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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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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상류주택. 시도민속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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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상류주택. 시도민속문화재.
내용

1986년 전라남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참판댁(李參判宅)으로 불려지는 이 가옥은 30여년 전에 정명식(鄭明植)이 구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 가옥은 사랑채와 행랑채만이 남아 있으나 본래는 안채와 사당 등을 고루 갖춘 규모가 큰 양반집이었다. 현재는 훼철되고 없는 안채가 11칸 규모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만 하다.

이 주택은 마을 중심부의 평지에 자리잡았고 건물은 직선축 위에 놓여서 동향하여 배치되었다. 건물의 배치는 가옥의 맨 앞에 줄행랑채를 두고 이와 평행되게 그 뒷편으로 사랑채를 앉혔으며 가장 안쪽에 안채터가 있다.

현재 살림집으로 쓰고 있는 사랑채는 상량문에 “崇禎紀元後五回甲辛未…(숭정 기원후 5회갑 신미…)”라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871년(고종 8)에 건립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정면 7칸, 측면 1칸 규모에 전후퇴를 둔 형태이며 홑처마를 얹은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구성은 좌측으로부터 부엌, 2칸의 방, 2칸의 대청, 방의 순으로 꾸며져 있고 맨 우측 1칸은 방으로 하지 않고 안채로의 진입을 위한 중문칸으로 계획하여 그 앞쪽에 2짝의 판장문을 달았다. 중앙의 정면 5칸에는 뒷쪽으로 반칸을 더 빼내어 내부공간을 넓게 활용하였다. 구조는 약 2척(尺) 높이의 장대석 바른층쌓기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네모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에는 주두가 얹히고 도리방향으로는 첨차를 내어 주심도리의 장혀를 받게 하였다.

창호는 전면의 방 출입문에는 2짝의 亞자살 미닫이문을 달았으며 그 덧문으로는 쌍여닫이의 띠살문을 설치하였다. 특히 대청과 방사이를 통하는 불발기문이 아름답다. 대청에는 네짝으로 나눈 4분합의 띠살문을 달아 서까래의 걸쇠에 매어달게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개방적인 마루생활을 하게 하였다. 가구는 뒷 평주(平柱)와 앞 퇴주(退柱) 사이에 고주(高柱)를 두개 세우고 대들보는 평주와 후면 고주 사이에 걸린 보 중앙의 동자주 위까지 연결되어 있는 특이한 가구형태를 하고 있다.

행랑채는 정면 8칸, 측면 1칸으로 우측으로부터 4번째 칸에 솟을대문간을 낸 맞배지붕의 줄행랑채이다. 평면 구성은 솟을대문간 좌측으로는 행랑방과 외양간, 그리고 곳간을 배열하였으며 우측으로는 모두 광으로 꾸몄다. 구조는 막돌초석 위에 네모기둥을 세운 삼량(三樑) 구조의 민도리집이나 솟을대문간에만은 기둥머리에 수평부재인 창방이 보내지고 주두가 얹혔으며 창방 밑의 인방사이에는 소로를 일정간격으로 배치하였다. 또한 창방과 주심도리 사이에는 국화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지붕에는 막새기와를 사용하는 등 각종 장식으로 꾸며져 이 지방 솟을대문 중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참고문헌

『전남의 전통건축』(천득염, 전남대학교박물관·전라남도, 1999)
『문화재도록』(전라남도, 1998)
『해남군의 문화유적』(국립목포대학교박물관·전라남도·해남군,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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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천득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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