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백련춘설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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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백련 춘설헌
허백련 춘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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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해방 이후 의재 허백련이 기거하던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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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해방 이후 의재 허백련이 기거하던 주택.
내용

1986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춘설헌은 한국화의 대가 의재(毅齊) 허백련(許百鍊)이 해방 직후인 1946년부터 그가 타계한 1977년까지 기거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한편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25시』의 작가 게오르규(Gheorghiu, C. V.) 등 국내외의 명사들과 교유하던 곳이다. 춘설헌이 자리잡은 곳은 증심사(證心寺) 입구의 상가를 지나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오르면 우측에 있는 높다란 대지이다. 춘설헌의 뒤쪽에는 새인봉쪽의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시냇물을 받아 조그만 인공 폭포가 마련되어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일제시대 때 동아일보 편집국장이던 최원순(崔元淳)이 신병을 요양하던 집이 있었으나 1950년 낡은 집을 허물고 다시 지었다.

건물은 벽돌 조적조로 현대식 건물이며 오랜 일본 생활에 길들여진 허백련의 취향을 살려 1칸의 다다미방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박공부분인 측면에 현관이 있고 현관을 들어서면 바닥에 장마루를 깐 대청과 2칸의 방이 있는데, 1칸은 다다미방이고 또 1칸은 온돌방이다. 이 2칸의 방이 그가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다. 2칸의 방 옆에 부엌이 있고, 부엌에 연이어 다음 건물이 중심축에서 약간 벗어나 자리잡고 있다. 건물 2동(棟)이 모두 1950년 겨울에 지어진 벽돌 조적조 건물이며 시멘트몰탈 마감으로 외벽을 바르고 있다. 주변에는 삼나무·오동나무·벚나무·은행나무·차나무 등이 심어져 있다.

허백련은 호가 의재이며 진도에서 태어났다. 한국 남종화를 완성한 소치(小痴)허련(許鍊)의 방손(傍孫)으로 역시 한국 근·현대 회화사에서 전통적 형식의 남종화풍(南宗畫風)을 계승한 남종화의 대가이다. 허련의 아들 미산(米山) 허형(許瀅)에게서 기본적인 필법을 익힌 뒤 서울과 일본에서 화업(畫業)을 쌓았으며 전통 남종화의 화풍과 정신을 고수하는데 진력하였다. 1938년 광주에 정착하여 서화 전승과 후진 양성을 목적으로 한 연진회(鍊眞會)를 발족시켰다. 광복 후 농촌 지도자의 육성에 뜻을 두고 삼애학원을 설립하고 민족의 정신적 지주를 확립하기 위하여 단군신전 건립 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도 공이 컸다. 일본인 오자기[尾崎]부자가 경영하다 해방과 함께 내버려 두고 있던 무등산 다원을 인수하여 전통 녹차의 재배·제조에도 힘을 기울였다.

참고문헌

『전남의 전통건축』(천득염, 전남대학교박물관·전라남도, 1999)
『문화재도록』(광주광역시, 1997)
『광주의 문화유적』(광주직할시,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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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천득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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