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체 높이 160㎝, 어깨 너비 80㎝, 무릎 너비 90㎝. 절 후면의 암석에 삼존상이 조각되어 있고 그 앞에 시멘트로 단을 만들어 이 석조여래좌상을 안치하였다. 이 불상은 원래 부근에 매몰되었던 것을 발굴하여 모셔 놓은 것이다. 목 부분이 절단되었던 것을 다시 이었다. 그리고 코의 끝 부분과 두 귀, 두 손, 무릎 부분도 파손이 심하였으나 현재는 석회로 보완하여 놓았다. 그 옆에는 역시 지하에서 발굴되었다는 대좌와 광배가 놓여 있다.
머리카락은 둥근 나발(螺髮)이며, 정수리에는 큼직한 육계(肉髻)가 솟아있다. 사각형의 얼굴은 적당히 살이 붙어 부드러운 윤곽과 함께 양감이 잘 나타나 있다. 가늘고 긴 눈, 높고 오뚝한 코, 듬직한 입 등이 균형 있게 배열되었다. 전체적으로는 은은한 미소가 감돌고 있다. 양쪽 귀는 길게 늘어졌다. 목에는 희미하게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신체 역시 정제되고 안정감 있는 표현을 보여 준다. 그러나 어딘지 약간 위축된 감이 있다. 즉 어깨가 약간 움츠러든 점이나 불상 높이에 비하여 무릎 폭이 좁아진 점 등이 통일신라 말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고 무릎 위에 놓았는데 손 위에 놓인 약그릇은 최근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위로 내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다.
대의는 양어깨를 감싼 통견(通肩)으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쪽으로 옷주름이 흘러내린다.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약사여래좌상(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비롯하여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1965년 지정) 등 통일신라 말에 제작된 불상의 옷주름과 비슷한 특징을 보여 이 불상의 제작 시기를 짐작케 한다. 옷주름은 비교적 얇고 유려하다. 가슴에 보이는 평행한 옷주름 선이나 무릎의 옷주름이 다소 형식화되었다.
불상 옆에 따로 놓여 있는 대좌는 상대석이 없고 중대석·하대석만이 남아 있다. 중대·하대 모두 8각으로, 하대석에는 각 면에 안상(眼象)이 1구씩 조각되어 있다. 그 위에는 복판(複瓣: 겹잎)의 복련(覆蓮: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중대에는 무슨 조각이 있었던 것 같으나 손상이 심하여 분별하기 힘들다.
광배는 현재 두 조각이 남아 있는데, 원형은 배모양의 광배(光背)였던 듯하다. 두광과 신광을 2줄의 음각선으로 구분하였다. 두광에는 연꽃무늬과 구름무늬를, 신광에는 구름무늬만 조각했다. 그리고 가장자리를 불꽃무늬로 둘렀다.
이 광배와 대좌는 모두 완형은 아니지만 그 형태가 통일신라 말에 널리 유행하던 대좌·광배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점이나 조각 수법이 우수한 점 등으로 보아 불상과 같은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정제된 얼굴의 모습, 약간 위축된 듯하나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 형식화된 법의의 주름 등으로 보면 조각 수법이 섬약하고 다소 긴장감이 빠진 감이 든다. 그러나 불신 조각의 우수함과 신체 비례의 균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에 제작된 일련의 석불좌상들과 궤를 같이하는 9세기경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