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부터 이 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이 석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귀부(龜趺)를 하대석으로 삼고 간주석(竿柱石)·화사석(火舍石)·옥개석을 놓았다.
간주석은 4각형 석재 각변의 모를 죽인 부등변8각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4각형의 상대석 각 면에는 연화문 대신 음각선문을 새겼고, 상면에는 4각형의 화사석을 놓았다.
화사석의 각 모서리는 공양상(供養像)을 배치하여 기둥으로 삼아 빈 여백이 자연스레 화창(火窓)으로 사용되도록 하였다. 옥개석은 우진각지붕형으로 하면에는 서까래목을 조출하고, 상면의 낙수면에는 기와골을 묘사하고 있다. 정상에는 연봉형의 보주(寶珠)를 놓았다.
이 석등은 귀부를 하대석으로 채용하였고, 화사석의 각 모퉁이에 공양상을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현존하는 한국석등에서는 이와 같은 유례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하대석으로 사용된 귀부 등 전체적인 조형 감각으로 보아 조선시대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