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신라 하대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하나인 사자산파(獅子山派)의 본거지이다. 사자산파의 개산조(開山祖)는 철감선사(澈鑑禪師)도윤(道允)이라 말하고 있지만, 실제 사자산문을 개창한 이는 징효대사(澄曉大師)절중(折中, 826∼900)이다.
징효대사는 882년(헌강왕 8)에 이 절에 와서 891년의 병화(兵火)를 피해 떠날 때까지 이곳에 살았다. 당시 헌강왕은 대사를 서울로 모시기 위하여 친서를 보냈고, 흥녕선원을 중사성(中使省)에 예속시켜 나라에서 돌보도록 하였다.
이후 천년 가까이 흥녕사는 겨우 명맥만 유지해오다가, 1902년에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감몽(感夢)을 받아 중건하여 절이름을 법흥사(法興寺)로 고쳤다. 1912년에 화재를 만나 1930년에 중건하였으나, 이듬해의 산사태로 절터 일부와 석탑이 유실되었다. 1933년에 이곳에서 1㎞ 정도 산쪽으로 올라와 다시 절을 지었으니 곧 지금의 법흥사다.
흥녕선원지는 법흥사로 들어가는 길 오른쪽에 있는 소나무밭 앞쪽에 위치한다. 절터는 남향으로서 서쪽으로 계곡이 흐르고, 동쪽은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넓은 지대이다. 현재 종형(鐘形) 부도 하나와 사리탑의 대석으로 보이는 석재가 나란히 놓여 있고, 주위에는 깨지거나 완형인 주춧돌들이 10여 개 묻혀 있다.
아울러 기와 · 토기 · 자기 조각들이 널려 있는데 약 1만평 규모로서 단국대학교에서 발굴한 바 있고, 금동불상이 출토되었다. 초석은 60㎝×75㎝ 크기에, 높이 40㎝이다.
선원지 앞길 옆 개울에는 거북모양 비석받침이 있는데 거북등에는 장육각형(長六角形)의 귀갑문(龜甲文)이 세 줄로 돋을새김되어 있고, 가운데에 넓게 판 비좌(碑座)가 있다. 거북의 앞면은 마모가 심하고, 머리도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법흥사 주변에는 징효대사탑비 및 그 부도가 있고, 법흥사 뒤 산쪽으로는 방형연화대석(方形蓮花臺石) · 석종형부도 · 석실(石室) · 석관(石棺) · 사리탑 등이 있다. 징효대사탑비는 1977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부도는 1982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