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손 초상 ( )

회화
작품
국가유산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윤희손의 초상화.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윤희손초상(尹喜孫 肖像)
분류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지정기관
대구광역시
종목
대구광역시 시도유형문화유산(2012년 01월 30일 지정)
소재지
대구광역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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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윤희손의 초상화.
구성 및 형식

이 초상화는 백색도포를 입고 공수한 채 오른쪽을 향해 걸어 가고 있는 좌안7분면의 전신 측면의 입상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내용

초상의 주인공인 윤희손(尹喜孫, 1547-1579)의 본관은 남원(南原)이며, 백호(白湖)윤휴(尹䥴)의 조부이다. 이준(李準)과 이풍후(李風后) 등에게 조광조(趙光祖) 학통의 성리학을 수학하고 음직(蔭職)으로 문관 종6품의 선무랑(宣務郞)에 올랐으나, 불행하게도 33세에 요절하였다.

초상은 윤희손 사후에 아들인 윤효선(尹孝先, 1563∼1619)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조광조의 학문을 계승한 선조의 유훈이 자손들에게 가학으로 전해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손자인 백호 윤휴에게 전해졌다.

현황

이 초상화의 상부에는 행적(行蹟)과 찬문(贊文)이 기록되었으며, 중하부에는 인물도를 그렸다.

제발문(題跋文)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재부군유상, 부군(府君)은 남원(南原) 윤씨로, 자(字)는 경원보(慶遠父)이고 정재(靜齋)라 자호(自號)하였다. 조부는 삼휴자(三休子)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를 종유(從遊)하였다. 부친은 눌헌(訥軒)으로 가정의 유훈(遺訓)을 잘 이었다. 부군께서는 어려서 부친을 잃고 삼휴자의 문인 당문부수(唐文副守)에게 배웠다. 가정(嘉靖) 정미년(丁未年, 1547)에 태어나 33세에 돌아가셨다. 벼슬은 선무랑(宣務􆧎)에 이르렀다.[靜齋府君遺像 府君南原尹氏 表字慶遠父 自號靜齋 祖三休子 從遊趙靜庵 考訥軒 克承庭訓 府君幼孤 受學于三休門人 唐文副守 生嘉靖丁未年 三十三終 位宣務􆧎]”

찬사(贊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의 호)과 정암의 제자 / 삼휴자와 눌헌의 자손 // 집안엔 문헌을 전해주었고 / 행동은 도의(道義)에 합당했다네 // 사물을 대함에는 조화롭게 하였고 / 아들을 가르침엔 법도가 있었네 // 연꽃을 좋아해 못을 만들고 / 산을 좋아해 집을 지었네 // 겉으론 세속에 순응했지만 / 마음속은 옥처럼 깨끗했다네 // 젊은 나이 세상을 떠나버리니 / 하늘은 어찌 복을 내리지 않는가[贊曰 寒靜之徒 休訥之嗣 家傳文獻 􆪧合道義 接物以和 敎子有方 愛蓮疏池 􆩖山堂 外雖徇俗 中實如玉 早年而逝 天何不􆧠]”

초상의 인물은 전신측면향의 자세로 앞을 향해 걸어가는 고사(故事)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두 손은 양 소매 안에 넣어 공수 자세로 걸어가는 모습의 측면전신상이다. 얼굴은 분홍색으로 칠하고 그 위에 더 진한 분홍색으로 색채를 강조하였고, 도포에는 호분을 칠하여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초상화의 복식은 검은색의 동파관(東坡冠)과 백색 직령을 입고 녹색포대를 두른 뒤 태사혜(太史鞋)를 신은 사대부의 편복(便服) 차림이다. 동파관은 북송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즐겨 쓰던 두건을 후세 사람들이 부르던 명칭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인종·명종 대부터 사대부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형태는 사각형 내장(內墻)과 외장(外墻)으로 된 이중관이다.

직령은 곧은 깃에 여밈이 깊고 소매통도 넓은 편이다.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우리나라 유사(儒士)는 외출 시에 홍직령을 착용하였고, 명종 재위(1545∼1567) 말년에 국상이 계속되어 백의(白衣)를 착용한 것이 습관화되었다고 하였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효종 재위(1649∼1659) 때 금제(禁制)가 점점 해이해져서 백색 직령과 백화(白靴)를 착용하고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효종 이전부터 백직령이 유행한 것으로 보고있다. 태사혜는 조선시대 양반 계급의 남자들이 편복 차림에 신던 마른 신의 하나이다. 운두가 낮고 신코와 뒤축에 태사 무늬를 장식했으며, 재료로는 주로 비단이나 가죽을 사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초상화는 몸과 얼굴을 옆으로 틀어 걸어가고 있는 동적인 장면을 잡아서 자연스럽게 입체성을 살린 점이 특징이다. 특히 정면관 또는 측면관에 교의좌상을 하고 있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초상화와 큰 차이를 드러내는 점에서 조선시대 또 다른 초상화의 형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역사인물초상화대사전』(이강칠, 현암사, 2003)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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