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고문(高文)

고대사인물

 삼국시대 고구려 위두대형을 역임한 장수.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고문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삼국시대 고구려 위두대형을 역임한 장수.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19대 선조 밀(密)이 모용씨(慕容氏)와의 싸움에서 전공을 세워 고씨성(高氏姓)을 하사받았다. 할아버지 식(式)은 막리지(莫離支)를, 아버지 양(量)은 책성도독 위두대형(柵城都督位頭大兄)과 대상(大相)을 지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그는 위두대형(位頭大兄)과 장군(將軍)을 겸했다. 648년(보장왕 7) 설만철(薛萬徹)이 이끈 3만의 당나라군이 박작성(泊灼城) 성주 소부손(所夫孫)이 이끈 고구려군 1만여인을 격파하고는 성을 포위하자, 박작성을 구하기 위하여 오골성(烏骨城)과 안지성(安地城) 등의 군사 3만을 거느리고 당군을 공격하였으나 패하였다.
그 뒤 고구려가 망하면서 그는 일족을 이끌고 당나라로 망명하였다. 당으로부터 669년 명위장군 행우위위 익부좌랑장(明威將軍行右威衛翊府左郎將)과 운휘장군 행좌위위 익부중랑장(雲麾將軍行左威衛翊府中郎將) 벼슬을 받았다. 그뒤 682년 좌위위장군(左威衛將軍)에, 684년 유성현 개국자(柳城縣開國子)와 식읍 400호에 이어, 유성현 개국공(柳城縣開國公)과 식읍 2,000호에 봉해졌다.
696년 여하도토격대사(濾河道討擊大使)에 임명되어 아들 자(慈)와 함께 거란을 격파하는 데 공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부자가 모두 적에게 사로잡혀 항복하지 않고 이듬해 5월 처형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이도학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