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負山)이라는 지역 명칭은 「광개토왕릉비」의 비문(이하 능비문)에 등장한다. 능비문에는 395년(영락 5)에 광개토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서 패려(稗麗)를 정벌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이때 고구려군은 부산(富山) · 부산(負山)을 지나 염수(鹽水)에 이르러 패려의 3부락 600∼700영(營)을 격파하고 수많은 소와 말, 양을 노획하였다고 전한다. 여기서 ‘부산(負山)’을 지명으로 보지 않고 ‘산을 등지다’는 의미의 서술어로 보기도 하지만, 문맥상 지역 명칭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일단 다른 기록에서는 ‘부산(負山)’이라는 지역 명칭을 찾기 어려우므로 능비문의 문맥과 주변에 있었다고 전하는 여러 지역들과의 관련 속에서 위치를 추정하여야 할 것이다. 능비문에서 기록된 순서대로라면 395년 당시 광개토왕 군대의 진행 방향은 부산(富山)→부산(負山)→염수 부근의 패려가 있는 지점으로 볼 수 있다.
당시 광개토왕이 최종적으로 공략하였던 패려라는 세력은 거란족의 일파로서, 서요하 상류 유역에 거주하던 유목 세력이었다. 그 인근에 있다고 하는 염수 역시 '소금이 나는 강'을 의미하며 서요하 상류의 어느 지점으로 비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부산(富山)은 광개토왕의 군대가 부산(負山)에 이르기 전에 지나쳤던 지역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삼국지』 동이전에 2세기 후반 당시 고구려가 요동 지역의 세력가였던 공손도(公孫度)를 도와서 부산(富山)의 적(賊)을 공격하여 깨뜨렸다는 기사가 나온다. 여기에서 ‘부산의 적’은 대략 당시 요령성(遼寧省) 무순(撫順) 일대로 비정되는 현도군(玄菟郡)의 북쪽 내지는 서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395년에 광개토왕의 고구려군이 부산(富山)을 지나서 최종적으로 서요하의 패려를 공격하였음을 감안한다면, 부산(富山)은 무순에서 북쪽의 서요하 상류로 가는 방향에 있는 개원시(開原市) 혹은 창도현(昌圖縣) 방면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부산(負山)은 개원시(開原市) 혹은 창도현(昌圖縣) 방면으로 비정되는 부산(富山)에서 서요하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산지(山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만 더 이상의 구체적인 추적은 어려우며 대략 흥안령(興安嶺)산맥 남쪽 끝의 어느 지점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