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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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고대사
지명
고구려 중기, 요동 방면에 있던 지명.
지명/고지명
지역
요동반도 남서부 해안가 일대|요령성 수암현|요령성 본계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북풍(北豊)은 고구려 중기, 요동 방면에 있던 지명이다. 「광개토왕릉비」를 보면 395년(광개토왕 5)에 광개토왕이 요서 지역에 있던 패려를 공략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풍을 지나며 영토를 시찰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438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망명한 북연의 왕 풍홍을 평고가에 두었다가 나중에 북풍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보인다. 북풍의 위치는 크게 요령성 개주시에서 멀지 않은 요동반도 남서부의 해안가 일대로 보는 의견, 그보다 동쪽의 내륙 지역인 요령성 수암현이나 본계시 일대로 보는 의견 등이 있다.

목차
정의
고구려 중기, 요동 방면에 있던 지명.
내용

북풍(北豊)의 위치를 크게 요령성(遼寧省) 개주시(盖州市)에서 멀지않은 요동반도 남서부의 해안가 일대로 보는 의견, 그보다 동쪽의 내륙 지역인 요령성 수암현(岫巖縣)이나 본계시(本溪市) 일대로 보는 의견 등이 있다. 우선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의 기록에 의하면 3세기 위나라 대에 요동군에 소속된 현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240년 2월에 요동군의 문현(汶縣)과 북풍현의 백성들이 바다를 건너서 산동반도로 오자, 위나라가 산동반도의 여러 군(郡)에 신풍현(新汶縣)과 남풍현(南豊縣)을 새로 만들어서 그 주민들을 살게 하였다고 전한다.

이 기록에서 보면 문현과 더불어 북풍현 역시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바다를 건너 산동반도로 갈 수 있는 가까운 지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현은 보통 요동의 평곽(平郭), 즉 지금의 요령성 개주시 일대로 비정되고 있다. 따라서 북풍도 문현과 마찬가지로 개주에서 멀지 않은 요동반도 남서부의 해안가 일대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북풍을 다른 곳으로 보기도 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면 438년(장수왕 26)에 고구려로 망명하여 온 북연(北燕)의 왕인 풍홍(馮弘)을 장수왕이 일단 평곽에 두었다가 다시 북풍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풍홍을 북풍으로 옮긴 것은 서쪽의 요하(遼河)를 경계로 한 국경지대에 가까이 있을 경우, 풍홍이 국경을 넘어 달아나거나 서쪽의 북위(北魏)를 자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풍홍이 옮겨진 북풍은 요동반도의 평곽으로부터 동쪽의 내륙으로 깊이 들어간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광개토왕릉비」의 영락 5년(395)조에는 광개토왕이 요서 지역에 있던 거란족의 일파인 패려(稗麗)를 공략하고 돌아오는 길에 양평도(襄平道)를 지나 동쪽으로 역성(力城)과 북풍 등을 지나며 영토를 시찰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때 광개토왕의 귀환길이 최종적으로 수도인 국내성(지금의 지린성 지안시)으로 향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행차는 양평(지금의 요령성 요양시)에서 평곽 방면으로 가다가 다시 동쪽의 압록강 방면을 향하여 갔다고도 볼 수 있다.

이때 광개토왕의 군대가 양평 남쪽으로 향하다가 다시 동쪽을 향하면서 북풍을 지나쳤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북풍은 지금의 요령성 수암현(岫巖縣) 지역이나 본계시(本溪市) 일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어느 쪽이든 북풍의 구체적인 위치를 비정할 수 있는 명확한 문헌적 · 고고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참고문헌

원전

「광개토왕릉비」
『삼국지』

단행본

武田幸男, 『高句麗史と東アジア』(岩波書店, 1989)

논문

서영수, 「광개토태왕의 패려 정벌과 요동 순수」(『광개토왕비의 재조명』, 동북아역사재단, 2013)
여호규, 「<광개토왕릉비>에 나타난 고구려의 대중인식과 대외정책」(『역사와 현실』 55, 한국역사연구회, 2005)
이성제, 「4세기 말 고구려와 후연의 관계: 396년 후연의 광개토왕 책봉 문제를 중심으로」(『한국고대사연구』 68, 한국고대사학회, 2012)
임기환, 「고구려의 요동 진출과 영역」(『고구려발해연구』 45, 고구려발해학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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