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탄행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문신.
이칭
숙평(叔平)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14년(숙종 40)
사망 연도
1774년(영조 50)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첨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에,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평(叔平).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이고, 아버지는 승지 김제겸(金濟謙)이며, 어머니는 도사 송병문(宋炳文)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경종 연간에 신임옥사가 일어나 1722년(경종 2)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사사되고 어린 나이에 금산(錦山)에 유배되었다가 1726년(영조 2)에 풀려나 여주의 양지(陽智)에서 살았다. 소론이 몰락하고 노론이 집권하자 1755년 선공감역(繕工監役)과 익위사부수에 보직되었으나 동료관원 가운데 소론이 끼어 있다고 나아가지 않았다.

뒤에 내시교관(內侍敎官)을 거쳐 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에 승진하고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서흥현감·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원주판관·금산군수·남원부사를 지낸 뒤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러 여주에 돌아와 죽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삼산재집(三山齋集)』
집필자
권영대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