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부석 설화(望夫石 說話)」는 멀리 떠난 남편이 약속한 기한에도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던 아내가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아내가 선 채로 그대로 돌이 된 유형, 아내가 죽은 후에 돌이 된 유형, 아내가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은 자리에 돌을 세운 유형, 원래 돌이 있었고 그 돌 곁에서 남편을 기다려서 '망부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내용의 유형 등이 있다.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이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는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수록된 박제상 부인의 이야기 외에도 여러 편이 문헌에 실려 전한다. 문헌에 기록된 이야기 중에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행동을 정절(貞節)의 화신으로 의미화하는 것들도 있다. 돌이 되는 화석(化石)의 모티프가 붙지 않고 아내가 기다리던 자리에 돌이 있었다거나 아내가 죽은 자리에 돌이 세워졌다는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 이야기들도 있다.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여성'의 모티프는 이보다 더 광범위한데 돌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망부석 설화 유형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구술 연행되는 이야기 중에도 망부석 모티프를 내포한 다수의 작품들이 있다. 이들 작품 모두에서 돌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선, 서사적으로 '돌이 되었다'거나 '돌을 세워 기억(기념)하고 있다'거나 '돌이 있던 자리에서 기다렸다'는 등의 서술에서 돌이 지닌 상징적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돌은 어떤 정념과 감정의 응집을 의미하며, 견고할 뿐 아니라 영원히 지속됨으로써 그 돌이 환기하는 사건에 대한 집단의 기억을 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연행과 전승의 측면에서 볼 때 돌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돌이 의례적 공간으로 기능하거나 주술적 행위의 대상, 혹은 그런 행위가 수행되는 장소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죽음, 더군다나 강력하게 응집된 정념이 결부된 죽음은 강력한 성적(聖的)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망부석(望夫石)의 돌은 기자치성(祈子致誠)이나 그밖의 다른 종교적 기원과 주술적 행위의 대상이 될 만한 초월적인 힘을 지닌 사물로 인식된다. 이런 의례나 주술적 행위가 중단된 경우에도 돌에 담긴 이와 같은 상징적 의미는 이야기를 통해 계속해서 전승된다.
「망부석 설화(望夫石 說話)」는 멀리 떠난 남편이 약속한 기한에도 돌아오지 않자 기다리던 아내가 돌이 되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아내가 선 채로 그대로 돌이 된 유형, 아내가 죽은 후에 돌이 된 유형, 아내가 스스로 몸을 던져 죽은 자리에 돌을 세운 유형, 원래 돌이 있었고 그 돌 곁에서 남편을 기다려서 '망부석'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내용의 유형 등이 있다.
「망부석 설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실린 신라시대 박제상(朴堤上)의 아내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에서 박제상의 부인은 치술령에서 죽어 망부석이 되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눌지왕 때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간 왕제(王弟)를 구해 온 박제상은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일본에 건너가 또 다른 왕제를 구해 보낸 뒤 일본에서 신라의 신하임을 고집하다 죽는다. 이때 그의 아내는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망부석이 된다. 이 지역 사람들은 모두 이런 죽음을 맞이한 박제상의 부인을 칭송하며 경외하였다. 박제상의 부인은 죽어서 치(鵄)라는 새가 되었고 같이 기다리다 죽은 세 딸은 술(述)이라는 새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기록은 이들 모녀가 치술령 신모(鵄述嶺神母)가 되었고 이에 주민들이 사당을 지어 모셨다고 전한다.
부인이 죽어 새가 되었다는 내용이 삽입된 「치술령 망부석 전설」에서 새의 의미는 일본에 건너간 뒤 소식이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여성의 심정을 대변하면서 죽어서라도 바다를 건너 날아가고자 했던 여성의 갈망을 표상한다. 또한 이 새는 죽음 이후 한계를 초월한 여성의 넋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몸으로는 남편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했으나 죽은 뒤에는 새가 되어 남편을 만나고자 했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니, 아내나 딸이 모두 새가 된 것은 죽은 후의 넋이라도 만남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실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망부석이라는 돌로 표상된 갈망의 내용이 이처럼 간절하고 절박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북도 월성군 외동면의 치술령 아래에 이들 새가 살았다는 은을암(隱乙庵)과 위패를 모신 당(堂)이 있다. 이런 경우 망부석뿐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죽은 이들이 마을의 당신으로 좌정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읍사 공원에 있는 망부석은 아내가 장사를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곳에 세워진 돌인데 여기에는 고려가요 「정읍사(井邑詞)」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여기서도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정념과 간절한 소망이 돌로 표상되었고, 이 돌은 바로 그와 같은 아내의 마음과 기다림의 사건을 영원히 드러내면서 기억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경상북도 영일군의 「망부산 솔개재 전설」은 신라 말 경애왕 때 소정승(蘇政丞)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 돌아오지 않자 부인이 산에 올라가 기다리다 지쳐 죽는 바람에 기다리던 곳의 산 이름이 망부산이 되었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이 부인의 죽음을 기리는 뜻으로 망부사(望夫祠)라는 사당을 지어 제를 지내고 부인과 같이 기다리던 개와 말의 무덤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에서는 돌이 나오지 않지만 그밖의 다른 요소들은 모두 「망부석 설화」의 모티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다만 여기서는 돌이 아니라 산이 등장하지만, 마을 우주의 중심을 상징하면서 영원한 기억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상징성을 지닌다. 중국에 사신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떨어져 죽었다는 서해안의 「낙화암 전설(落花巖 傳說)」도 '망부석 설화'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망부석 설화」에서 연행과 전승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망부석이라는 돌이다. 전승되는 이야기 가운데 상당수는 마을에서 중요한 종교적 의례가 행해지는 장소나 마을 지형의 중심을 상징하는 공간에 주술적 상징성을 띠는 돌이 이야기에 앞서 세워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돌의 유래와 기원, 돌에 깃든 힘의 기원과 내력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망부석 설화」 유형의 이야기가 형성되어 전승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망부석 설화」에서 돌은 단순히 전설의 증거물인 사물의 의미를 넘어서는 효과를 드러낸다.
「망부석 설화」에서 돌을 서사적으로 기다림의 행위에 깃든 강렬한 감정과 정서, 그리고 그러한 감정의 응집을 표상한다. 또한 돌은 집단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영원히 기억하게 만드는 표식인 동시에,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끊임없이 환기하는 대상이다. 일종의 기념비인 동시에 초월적 힘이 지배하는 신성한 공간임을 드러내는 표식인 셈이다. 그리고 이 돌에 실제로 특정한 주술적 행위나 의례적 상징성이 결부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것은 '마을 우주의 중심'을 표상하는 신성 공간, 혹은 신성 대상으로서의 돌에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의 죽음이라는 사건의 서사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여러 연구자들은 이를 '정절'과 '절의'로 의미화하기도 했으나 이는 조선시대 기록된 일부 문헌 자료의 의미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일 뿐 '망부'의 주체와 그 행위의 동기를 이와 같은 의미에만 한정할 수는 없다. 또한 이와 같은 해석은 특정한 젠더 편향성에 기댄 해석으로, 구전되던 이야기의 적층적 의미망을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끝끝내 죽음이라는 파토스에 이르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을 향해 나아갈 수 없었던 아내의 정념과 외곬수적으로 그려진 이 정념의 응집이다. 이것이 남편과 아내의 서사로 서술된 것은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간절한 정서와 감정이 이처럼 강렬한 것이라는 문화적 해석의 관습을 따른 것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망부석 설화」는 좌절된 정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꺾이지 않는 마음을 하나의 신화적 사건으로 서술하는 이야기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패턴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