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리총 ()

목차
관련 정보
청동초두
청동초두
고대사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돌무지덧널무덤. 적석목곽분.
이칭
이칭
노동동 126호분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돌무지덧널무덤. 적석목곽분.
개설

식리총은 경주 노동동고분군에 포함되어 있으며 일련번호는 노동동 126호분이다. 1924년에 일본인 우메하라〔梅原末治〕등이 발굴조사하였다.

내용

발굴 당시 이 고분은 외형이 크게 손상되어 있었으나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임이 밝혀졌다. 현존하는 봉토분 규모는 길이 13m, 높이 약 5.4m이다. 내부구조는 경주고분군에서 일반적인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었다. 지하에 구덩이〔土壙〕를 파고 덧널〔木槨〕을 설치했는데, 덧널은 외덧널식〔單槨式〕으로 덧널의 장축은 동서로 놓여 있었다. 덧널의 크기는 길이 5.3m, 너비 3.3m의 직사각형 평면이며, 높이는 1.2m였다.

덧널과 구덩이 벽 사이, 그리고 덧널의 위에는 냇돌로 돌무지를 쌓았고 돌무지 위에는 봉토를 씌웠다. 덧널 바닥에는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가운데에 널〔木棺〕을 안치했고 널의 크기는 길이 약 2.4m, 폭은 0.78m이다. 널 동쪽에는 각종 껴묻거리가 배치되어 있었다.

널이 놓여 있던 곳에서는 동쪽으로 머리를 둔 피장자가 직접 착장했던 유물들이 놓여 있었다. 금제관드리개·가는고리금귀걸이·유리구슬목걸이·은제허리띠〔銀製銙帶〕와 띠드리개〔腰佩〕·은팔찌 등의 장신구와 철제고리자루큰칼〔鐵製環頭大刀〕1개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널 서쪽 끝부분에서 이 고분의 이름을 짓게 한 특징적인 금동신이 출토되었다. 이 금동신은 거북등모양〔龜甲形〕윤곽 안에 각종 괴수(怪獸)의 타출무늬〔打出文〕가 새겨진 서역(西域) 미술과 관련이 깊다.

널 동쪽의 껴묻거리 구역에서는 금동장안교(金銅張鞍橋)를 비롯한 각종 마구(馬具)·청동합(靑銅盒)·자루솥〔鐎斗〕을 비롯해 금속용기와 칠기·토기·금은장고리자루큰칼 등의 무기가 출토되었다. 청동합은 뚜껑손잡이가 새모양으로 된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자루솥은 중국 동진(東晋)에서 유행한 형식이다.

의의와 평가

고분의 규모와 출토된 금동제 유물로 보아 식리총은 신라 국왕의 무덤이라기보다는 왕족이거나 최고의 귀족무덤으로 판단된다. 피장자는 널 안에서 출토된 고리자루큰칼로 보아 남자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고분의 축조연대는 삼국시대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서는 비교적 늦은 5세기 말경이나 6세기 초엽으로 편년된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신라고분연구』(최병현, 일지사, 1992)
「慶州金鈴塚飾履塚發掘調査報告」(梅原末治,『大正十三年度古蹟調査報告書』1, 1932)
집필자
김선숙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