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개성(開城). 고려 신종의 6대손이며, 공양왕의 숙부이다.
처음에 학성후(鶴城侯)에 봉하여졌다가 뒤에 학성부원군(鶴城府院君)으로 되었다. 1361년(공민왕 10) 원나라에 가서 신년을 하례하려다가 홍건적의 난으로 길이 막혀 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 때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하여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에 행차하였으므로 아우 익원부원군(益院府院君) 왕정(王鉦)과 함께 행재소(行在所: 임금이 일시 머무는 곳)에 가서 배알(拜謁)하였다.
1377년(우왕 3) 환자(宦者) 김수만(金壽萬)의 처와 전민문제(田民問題)로 다툰 일이 있었는데, 그 여자가 학성부원군을 모해하기 위하여 우왕을 해치려 한다고 하니, 우왕이 순군(巡軍)에 명하여 집을 지키게 하고 김수만의 처를 국문하니 거짓임을 자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