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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화삼덕도(龍華三德道)

    신종교단체

     1952년 강기춘(康基春)이 창시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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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용화삼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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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강기춘(康基春)이 창시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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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봉남계(奉南系) 신종교이다. 강기춘은 1903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에서 출생, 16세 때 출가하여 남편을 따라 일본에 건너가 살다가 1945년 귀국하였다.
    1946년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같은 고향 사람이자 이후에 봉남계 교단인 천지대안교(天地大安敎)를 창립한 부경순(夫景順) 여인의 소개로 김봉남(金奉南)을 찾아가 병이 치유되면서 그의 열렬한 신도가 되었다.
    1950년 김봉남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들이 모여 김봉남을 추모하고 교단 조직을 갖추기로 함에 따라 김옥재(金沃載) 등의 주장에 따라 김해 대동면 수안리에 제각을 마련하고 교단의 본부는 강기춘의 집에 두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강기춘의 집 2층에 법단(法壇)을 설치하였는데 불교의 형식을 본따서 미륵불상을 중앙에 봉안하고 그 옆에 김봉남의 영상(影像)을 모신 뒤 용화사(龍華寺)라는 간판을 붙이게 되었다. 그러나 몇 개월이 못되어 내분이 벌어지게 되었다.
    근본적인 이유는 김봉남의 가르침을 불교적으로 해석하여 신앙하려는 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에 강기춘도 부산시 서구 아미동의 자기 집에 설치되어 있던 기존 법단을 자기 뜻대로 수정을 가하여 유지하면서 김봉남의 물법을 자기 나름대로 포교하여 상당한 신도들을 확보하였다.
    그 뒤 자신의 동료들도 제각기 자기 교단을 만들어 분립하는 것을 본 강기춘은 1965년 1월에 ‘용화삼덕도’라는 교명을 내걸고 정식으로 교단을 이룩하였다.
    1950년 김봉남이 죽은 뒤 몇몇 김봉남의 제자들과 1952년에 불교적인 색채가 가미된 봉남교를 창립하였으나 내분이 생겨 해체해 버리고, 1964년에 부산 서구 아미동에서 용화삼덕도라는 간판을 걸고 정식 종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6년에 강기춘이 죽자 부산의 교세가 크게 약화되었고, 현재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에 일부 신도들이 남아 있다.
    한때에는 1,000여 명의 신도가 있었다. 신앙대상은 천황(天皇)·인황(人皇)·지황(地皇)을 뜻하는 봉남교조와 태상노군(太上老君), 그리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이다.
    수련은 단식요법과 냉수요법을 통하여 정신병과 위장병 등을 고치는 치병요법을 위주로 하고, 연 일곱 차례의 정례의례일이 있다. 『태화경(太和經)』·『음부경(陰符經)』·『용화삼덕도경집요(龍華三德道經集要)』 등의 경전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탁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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