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1년(원종 12)에 국자박사(國子博士)로 대장군 곽여필(郭汝弼)과 함께 서경에 가서 도망한 백성을 찾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1280년(충렬왕 6)에는 쌍성(雙城)에 가서 민호(民戶)의 쇄환(刷還)을 추진하였다. 1283년에 정랑으로 낭장(郎將) 김위량(金位良)과 함께 개원로(開元路: 지금의 만주지방)에 가서 인물(人物)을 추쇄한 공으로 이듬해 왕으로부터 말 두 필을 상으로 받기도 하였다.
이 미디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비스에만 활용하도록 허가받은 자료로서, 미디어 자유이용(다운로드)은 불가합니다.
항목 내용 중 오류나 보충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 또는 미디어 설명에 수정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문의나 의견을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남겨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용 시 아래와 같이 출처를 표시해 주세요.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