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의사전 ()

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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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규원이 의병장 류시원의 의병활동에 관하여 저술한 의병록. 전기.
목차
정의
류규원이 의병장 류시원의 의병활동에 관하여 저술한 의병록. 전기.
내용

모필본. 1945년 광복 이후에 지었다. 류시연은 어려서부터 용맹이 있고 지혜와 담략이 있어 전사(戰史)와 병서(兵書)를 탐독하고 전술과 전략에 통달하였으며, 서책에 임해서는 늘 국가의 위태로움을 걱정하였다.

이에 활·창·화약 등을 만들기도 하고, 1905년에는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안동에서 권세연(權世淵)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그 선봉이 되어 을미의병 이래 의병항쟁을 계속 벌였다.

그 뒤 족질되는 창식(昌植)·인식(寅植)과 동지 중에서 이현규(李鉉圭)·신돌석(申乭石) 등과 함께 나라를 위하여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으며, 영남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진보·영덕 등지에서 왜군을 물리치고 관동의병장 이강년(李康秊)과 작전을 함께 수행하다가 적의 반격을 받아 후퇴하였다.

다시 만주로 건너가 이상희(李象羲)·김동삼(金東三) 등을 만나 만주지방에서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이 때 안창호(安昌浩)를 만나 무기 구입에 대하여 의논하고 그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국내에 잠입하였다가 영주에서 일본경찰에게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 구금당하였다.

법원에서 일본인 검사가 직업을 물었을 때 “나의 직업은 의병활동뿐이다.”라고 말하여 일본인 검사를 당황하게 하고 강력한 항일의지를 표명하였다. 마침내 1914년 1월 3일 그는 일본의 형장에서 태연자약하게 순국하였는데, 이 책에는 이러한 그의 항일투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류시연은 을미의병과 병오의병을 통하여 의병항쟁사에 빛나는 전적을 올렸으나 그에 대한 기록이 극히 빈약하였는데 이 기록은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현재 류시연의 큰 아들 동린이 소장하고 있다.

집필자
이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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