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6년(중종 31) 왕명을 받고 명나라의 원접사(遠接使)를 진료하였고, 중종·인종·명종이 죽을 때 모두 입진시약(入診侍藥)하여 여러 차례 상을 받기도 하였다.
1550년(명종 5) 의원 김윤은(金允誾)과 함께 『달학이해방(疸瘧易解方)』을 편집하였고, 이듬해 중궁(中宮)의 산실의원으로 한 자급(資級) 더해지고, 1565년 가의대부(嘉義大夫)의 자급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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