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보령 출생. 동국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48년 7월 재학 중에 서울신문사에 입사하여 법조계 출입기자로 언론생활을 시작하였다.
사건취재에 뛰어나 1954년 2월 경향신문사 기자로, 이어 그 해 3월 한국일보사 기자로 언론사간에 스카우트당하는 기자가 되었으며, 1956년 4월에는 자유당정권과 싸우던 동아일보사로 발탁되어갔다. 사건이 돌발할 때마다, 특히 부정선거와 관련된 사건에는 『동아일보』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현장기자로서 명성이 높았다.
3·15정부통령부정선거 때에는 마산을 비롯한 전국의 부정선거의 현장취재반장으로 활동, 특유의 필치로 부정을 캐내는 ‘일급필봉’의 기자였다. 사회부차장을 거쳐 1960년 한 때 퇴사한 일이 있으나 바로 복귀하여 1965년 7월까지 10년 가까이 봉직하였다.
그동안 지방부차장·출판부장도 잠시 거쳤는데, 1965년『중앙일보』가 창간되면서 초대사회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 중앙일보사에서 지방부장·편집부국장·판매부국장·논설위원 등을 거치고, 1967년에는 편집국장석기자(編輯局長席記者)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생긴 새 직제에 앉았다.
말하자면 취재에 뛰어난 대기자(大記者)를 위한 직제로 평가된다. 동아일보사 재직중인 1964년 8월에는 한국기자협회의 초대회장에 추대되어 5·16혁명 이후 군사정부에 의하여 위축된 신문기자들의 사기를 고양시키기 위한 활동에 적극성을 띠었고, 다음해 제2대회장에 다시 뽑혔다.
언론탄압에도 꺾일 줄 모르는 기질이 신문기자사회에서 으뜸으로 손꼽혔다. 1973년 4월 신병으로 중앙일보사를 퇴직, 치료중 건강이 악화되어 별세하였다. 곧은 성격에 호주형으로 당대의 사건문필가로 평가받을 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