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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인간의 판단이나 행동에 필요한 또는 실정에 대하여 알고 있는 지식.
내용 요약

정보는 인간의 판단이나 행동에 필요한 또는 실정에 대하여 알고 있는 지식이다. 영어의 ‘information’을 우리말화한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통상적으로 일반 사회와 저널리즘 분야에서는 정보를 ‘실정에 대하여 알고 있는 지식 또는 사실내용’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산학 분야에서는 ‘일정한 약속에 기초하여 인간이 문자·숫자·음성·화상·영상 등의 신호에 부여한 의미나 내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문헌정보학 분야에서는 ‘인간의 판단이나 행동에 필요한 지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정의
인간의 판단이나 행동에 필요한 또는 실정에 대하여 알고 있는 지식.
개설

정보라는 용어는 영어의 ‘information’이 우리말화한 것으로서 국내에서는 196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서양에서도 1940년대 이전의 문헌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용어였다.

정보의 정의를 위한 시도는 그 동안 많이 이루어져 왔으나 정보의 포괄적 개념 정의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 이유는 일반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 학술적으로 사용하는 의미가 부분적으로 다르고, 또 학문 분야별로도 그 의미를 상이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일반 사회와 저널리즘 분야에서는 정보를 ‘실정에 대하여 알고 있는 지식 또는 사실내용’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전산학 분야에서는 ‘일정한 약속에 기초하여 인간이 문자 · 숫자 · 음성 · 화상 · 영상 등의 신호에 부여한 의미나 내용(예: bit)’으로 사용하고 있고, 문헌정보학 분야에서는 ‘인간의 판단이나 행동에 필요한 지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지식사회학자 자이퍼트(Seiffert, H.)는 ‘정보(information)’라는 용어의 어원이 ‘informatio’라는 라틴어 또는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였다. 자이퍼트에 따르면 라틴어의 ‘informatio’는 원래 형태 또는 내용을 지니는 무엇인가의 제공(providing)이라는 의미였으나 형성(forming) 또는 교육의 뜻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이때 ‘information’이 지녔던 교육의 의미는 가르침 · 지도 · 교화 등을 통한 주관적 교육 보다는 진술 · 설명 · 해명 등에 의한 객관적 교육의 측면을 주로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베어지히(Wersig, G.)는 정보(information)라는 용어가 오랫동안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또 1940년대 이전의 문헌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 이유를 ‘information’의 교육적 의미와 ‘education’의 의미가 부분적으로 동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는 ‘information’의 교육적 의미와 관련된 학문(예: 교육학, 사회학, 심리학)들이 최근까지 주로 주관적인 교육 측면에 집중함 따라 이를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용어인 ‘education’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정보라는 용어에 담겨있던 객관적 측면의 교육이라는 의미는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에 독일에 유학중이던 모리오가이(森鷗外)가 최초로 독일어의 ‘inform’이라는 단어를 ‘정보’로 번역하였다. 그는 ‘情’은 ‘사정이나 실정’의 뜻을, ‘報’는 ‘보도 또는 보고’라는 뜻으로 파악하여, 실정을 정확히 파악하여 전달하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정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그 뒤 1927년 오카쿠라 유조(岡創由三)의 『신영화사전(新英和辭典)』에서 information이 처음으로 정보로 번역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8년에 문세영(文世榮)이 발행한 『조선어사전(朝鮮語辭典)』에서 정보를 ‘사정의 통지’라는 의미로 수록한 것이 최초이다.

자연과학 분야에서의 도입

정보라는 용어가 학술적 전문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사회과학 분야에서가 아니라 1940년대 후반 통신기술자인 섀논(Shannon, C. E.)과 위버(Weaver, W.)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신호(signal) 전송의 가장 적절한 방법을 개발하고자 하였으며, 전송되는 신호연속체를 정보(information)라 하였다.

이 이론의 핵심은 신호가 신호의 객관화된 의미와 관련을 맺도록 하는 방식을 통해 신호연속체의 정보 내용을 양적으로 계산하여 통계적 해석을 하는 것이다. 이때 정보는 객관적 형태에서만 파악되므로 전달상의 모든 왜곡 가능성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론은 1949년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이론’으로 명명되었으며, 뒤에 ‘정보이론(information theory)’으로 발전되었다.

섀논과 위버의 정보 개념은 전후 정보 · 통신기술의 발전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학문세계에서 한동안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철학적 이론인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에 연계되면서 여러 분야로 확장되었다. 전후의 사회는 범세계적 관계를 형성시켜 나갔으며, 이러한 관계에서 점점 복잡화되는 사회적, 기술적 프로세스의 조정 관리에 정보 · 통신기술은 필수적 도구가 되어 갔고 정보이론은 이러한 기술의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기술발전과 더불어 피드백(feed back) 개념에 의해 유기체와 기계와의 비교가능성을 부여하는 사이버네틱스라는 새로운 철학적 이론이 위너(Wiener, N.)에 의해 생성되었다.

사이버네틱스는 비정보화된 어떤 기본요소가 존재하고 또 이와 병행하여 나타나는 모든 현상에 이 기본요소가 적합한 것일 경우에만 성립될 수 있는 이론으로서 정보라는 현상을 기본요소로 제시한다. 특히, 사이버네틱스는 당시 점점 분화되고 서로 대립되어 가던 학문 분야들을 다시 종합시킬 수 있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이론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정보이론과 사이버네틱스의 기본 개념인 정보는 그때까지 부정확하게 규정된 문제 영역들에 적용될 수 있었으며, 또 내용적 해결 대신 언어적 해결을 통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또한 정보이론과 사이버네틱스가 지니는 수학적, 방법론적 도구로서의 매력에 의해 스스로를 현대적 학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번쯤은 이 새로운 이론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 이론들은 1960년대 초반까지 언어학 · 심리학 · 사회학 · 저널리즘 · 물리학 · 정보공학 · 통신공학 등의 학문 분야에 수용되는 이른바 정보붐을 일으키게 되었다.

사회과학 분야에의 도입(정보와 학술 커뮤니케이션과의 결합)

그러나 정보의 내용에 대한 정보이론적 평가척도가 전문영역을 벗어난 실제적 적용에는 제대로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정보 개념의 확산과 더불어 저널리즘과 다른 학문 분야에서는 ‘정보홍수’, ‘정보사태’, ‘정보은행’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객관적 개념에 의한 정형적 도구로서의 이들 이론에서 사용하던 정보의 개념은 관련된 사회적 문제를 모두 설명해 낼 수 없었다.

따라서 정보 개념은 다시 불명확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정보의 개념을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차원의 발전에 따라 정보 개념과 정보학의 결합이 형성되었으며, 이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나의 움직임은 일반 공중들의 새로운 인식으로서, 이들은 복잡화되는 주위환경에 대한 접근에 더 이상 목적지향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그 메시지의 발생에 대한 사실 설명을 원하게 되었다. 즉, 무엇인가 정보화되기를 원했고, 이는 오늘날 주로 언론학이나 신문방송학에서 사용하는 정보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다른 하나의 사회적 현상은 학자와 기술자들이 그들 작업의 토대인 축적된 지식들이 항상 사용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즉, 지식 전달의 전통적 매개체인 출판물의 양이 증대됨에 따라 축적된 지식의 사용이 어렵게 된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전문분야 종사자들은 정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뭔가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정보는 정보검색(information retrieval) 등의 새로운 실무영역과 매우 빠른 속도로 연결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정보 개념의 사회과학적 이론 기반 및 이후 정보학으로 발전된 학술정보커뮤니케이션 분야와의 결합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학술정보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발전, 즉 정보학의 발전에 있어서 정보이론과 사이버네틱스의 정형적 방법론이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지식을 생산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사회적 관계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어느 정도 정보이론과 사이버네틱스의 정형적 측면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편, 정보이론의 붐 이후 순수 정보이론적 주장들도 정보를 사회지향적으로 해석하는 관점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오늘날 기술 분야에서도 정보를 정량적인 개연성이 아니라 내용적 지시를 포함하는 데이터로 파악하고 있으며, 또 순수 정보이론에서의 정량적 정보 개념도 전산학과 결합되면서 오늘날에는 ‘bit’라는 용어로 대체되어 사용되고 있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정보의 개념에 대한 학제간의 부분적 동의

비교적 최근에 발전된 학문들의 경향을 보면, 먼저 스스로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자기 학문 분야의 명칭에 대한 개념을 확증한 다음 이를 가지고 다른 학문 영역들과 경쟁을 해 나간다.

이러한 현상은 정보학과 전산학 사이에서도 1970년대에 나타났었으며, 각자의 학문 분야에 유리하게 적용시키려고 다투게 되었다. 그 결과 서로 상반되게 이해하는 부분에 대하여 관련상황에 입각한 해석이라는 화용론적 관계를 선택적으로 적용시킴으로써 상이한 입장들을 정리하고 말았다.

이러한 해법에 의해 용어의 정의에 대한 각 학문들의 긴장 관계는 해소될 수 있었으나 정보의 개념을 단일적으로 명료하게 정의하려던 학문적 시도는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으며, 오늘날 정보의 개념을 문맥에 따라 이해해야 할 만큼 혼란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최근에 인공지능, 인지과학 등 몇 개의 연구 분야가 새로이 생겨나면서 다시 정보에 대한 해석문제가 대두되었으며, 각자의 학문 분야에 유리한 용어의 정의를 위한 노력이 또 한번 거세게 진행되었다.

이와 관련된 최근의 학문적 작업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은 오늘날의 기술적, 경제적 환경변화에 따라 지식과 정보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여전히 무엇인지 잘 모르고 또 모호하기만 한 ‘정보’를 기초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학문의 기점으로 삼아 정보를 실용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의 정보학자, 전산학자 그리고 컴퓨터언어학자들은 1988년의 회합에서 다음과 같은 합의를 이룬 바 있다. 데이터(data)는 원래 시간 또는 시각을 나타내는 ‘datum’에서 비롯되었으나, 일상어적으로는 사실 · 진술 · 가치 · 논거 · 재료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산학 등에서 사용하는 제한적인 의미에서의 데이터는 컴퓨터에 적합하도록 부호화되어 이해, 저장, 가공, 전달 및 출력되는 모든 것들을 말한다.

데이터는 원래 수와 기호연속체(예:단어)들의 표현을 위해 상이하게 조합되고 다양한 서술형태로 구성된 철자, 숫자 및 특수기호들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래픽이나 그림을 화소형식(pixel mode)으로 재현하는 비트형태(bit form)도 데이터로 받아들여진다.

그 외에도 데이터에 대한 여러 제한적인 해석이 있을 수 있으나 위의 회합에서는 컴퓨터에 의한 데이터처리와 관련된 관점에서만 데이터를 파악하였다.

데이터를 컴퓨터와의 관련성에서만 파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식은 개인(그의 기억 속에 재현됨), 사회의 여러 그룹이나 조직, 문화권, 또는 인류전체에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구체적이고 추상적인 대상과 사건, 그리고 사실내용에 관한 모델들의 현재고(現在庫)를 가리킨다. 정보는 특정의 개인이나 그룹, 조직 등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행동(예:문제의 해결)을 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지식의 부분적 집합을 의미한다.

총체적으로 실용적이라고 형용될 수 있는 이러한 틀에서 볼 때 정보는 지식 및 지식의 구조로부터 연역될 수밖에 없다. 이때 정보의 내용과 의미는 주변의 요구나 조건들의 변화에 따라 다양화되며, 행동의 상황적 관련성에 의해 정보의 질과 특정성이 규정된다. 따라서 정보는 이른바 ‘행동을 위한 지식(knowledge for action)’, 또는 ‘활성화된 지식’인 것이다.

기억에 의해 지식의 사용이 가능하듯 지식은 자기 자신에게만 관련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는 특정 상황과 커뮤니케이션 관계 내에 들어 있는 것이어서 각 주체와 외부와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으며, 특히 ‘face to face’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face to file’ 커뮤니케이션에 의해서도 얻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는 정보가 다른 지식으로(또는 다른 지식과) 통합되는 순간(예를 들면 인간의 뇌 속에서) 정보로서의 성질은 다시 상실되며 점점 비특정의 지식 단위로 되어간다. 따라서 정보의 성질은 일시적이고 변하기 쉬운 것이며 객관적이지 않다.

정보의 형태란 정확히 말하면 정보의 재현형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문자정보, 수치 · 데이터정보, 음성정보, 화상정보, 영상정보로 나누어지며, 상이한 정보가 조합된 경우 멀티미디어 형태의 정보라고 한다.

특히 멀티미디어는 최근까지 문자, 화상, 영상들의 혼합교재를 표현하는 용어였으나 오늘날에는 컴퓨터를 통해 불러낼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에 국한되어 사용되며, 기술적 측면에서는 최소한 하나의 지속적 디지털 미디어(예: 영상)와 이에 상호작용할 수 있는 다른 하나의 간헐적 디지털 미디어(예: 음성, 문자 등)가 조합된 것으로 정의된다.

다양한 정보의 형태를 담는 정보매체를 세계사적 측면에서 개괄하면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정보매체는 선사시대의 동굴벽화와 같은 고착화 형태라 할 수 있다. 고대에는 점토판 · 양피지 · 파피루스 등의 운반 가능한 매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으며, 이후 종이와 인쇄술이 발명되어 오늘날까지 인쇄물이 정보매체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1829년 프랑스의 니에프스(Niepce, J. N.)에 의한 카메라 상의 영구고정 성공, 1887년 미국의 에디슨(Edison, T.)에 의한 축음기의 발명, 프랑스인 뤼미에르(Lumiere, L.)의 시네마토그라프의 개발과 더불어 새로운 매체에 의한 아날로그 방식의 화상, 음성 및 영상정보의 기록이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디스켓, CD-ROM, 멀티미디어와 같은 디지털 정보매체의 이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착화된 형태의 정보매체로는 신석기시대 말부터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발견된 「반구대암각화(盤龜臺巖刻畫)」가 있으며, 그 밖에 삼국시대광개토대왕비, 점제현신사비, 고구려 고분벽화 등을 들 수 있다. 점토판 · 양피지 · 파피루스 등의 사용은 국내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종이는 일반적으로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 형태의 정보전달 실체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본이라는 751년 무렵 간행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에서 찾을 수 있다. 금속활자에 의한 인쇄물은 기록상으로는 1234년(고려 고종 21)경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상정고금예문(祥定古今禮文)』으로 나타나지만, 입증이 가능한 실물이 존재하는 것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1377년(고려 우왕 3)의 연대가 기록된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신에 의하여 문자, 수치 또는 데이터 정보의 전달이 이루어진 것은 서울과 인천에 전기통신망이 가설된 1885년이며, 음성정보의 전달이 최초로 이루어진 것은 서울∼인천 간 전화가 개통된 1896년이다. 음성정보의 기록물이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알렌이 원통형 유성기를 들여온 1884년이며, 우리나라의 음악을 담은 음반이 최초로 보급된 것은 1908년이다.

카메라에 의한 화상정보 매체가 국내에 도입된 시기는 고종의 초상사진을 촬영한 1884년이며, 필름에 의한 영상정보 매체가 등장한 것은 처음으로 영화가 상영된 1903년을 그 시초로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컴퓨터에 의한 디지털 정보매체를 사용한 것은 1966년 간이인구센서스 처리를 들 수 있으며, 1982년 한국데이타통신(주)이 설립되면서 디지털 형태의 정보통신이 활성화되었다.

특히 1994년 인터넷이 상업화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문자정보 외에 음성, 화상, 영상 및 멀티미디어 형태의 정보들을 범세계적으로 동시에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이러한 정보통신망을 통한 정보의 이용 및 산업화가 서구산업국가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활발하게 전개 · 발전되고 있다.

「정보통신연구개발에 관한 법률」(법률 제4438호)에 따르면, 정보통신이란 ‘전기통신설비 또는 전자계산조직을 이용하여 모든 종류의 부호 · 문자 · 영상 또는 음향을 송신하거나 수신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정보통신은 컴퓨터 및 주변장치를 전기통신회선에 접속하고 이를 이용하여 정보를 주고 받거나 처리하기 위한 전기통신이라 할 수 있는데, 1980년대의 우리나라 전기통신정책의 주요 방향은 정보통신 진흥을 위한 전기통신회선 사용에 대한 규제의 완화라고 할 수 있다.

국내의 정보통신 발달을 통신정책의 변화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1885년 전신시설이 처음으로 도입된 이래 1982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족되어 사업 주체가 바뀔 때까지의 국가독점 운영시대, 이후 1991년까지의 한국전기통신공사와 정보통신전담회사인 한국데이타통신에 의한 시장분할 독점시대 또는 부분적 자유화시대, 그리고 1991년 8월 전기통신법과 전기통신사업법의 전면개정에 의한 경쟁원리 강화시대로 나눌 수 있다.

1991년 전면개정된 「전기통신기본법」(법률 제4149호)과 「전기통신사업법」(법률 제4182호)에 의하면, 이전에 공중전기통신사업자와 정보통신역무제공업자로 나누었던 전기통신사업을 기간통신사업자와 부가통신사업자로 개칭하였으며, 기간통신사업자는 다시 일반통신사업자와 특정통신사업자로 세분하였다.

일반통신사업자는 전국 규모의 통신설비를 보유하여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로서 통신회선설비의 임대가 가능하고 제공서비스의 종류 및 지역적 제한이 없다. 이에 반해 특정통신사업자는 자기업무용 통신설비만을 보유하여 지역적, 기술적으로 제한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이다. 부가통신사업자는 일반통신사업자로부터 임차한 일반통신회선에 정보통신설비를 접속하여 전신과 전화 이외의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로서, 정보통신서비스 분야가 여기에 속한다.

정보서비스의 제공 및 이용과 관련하여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국내의 정보통신서비스는 엄격히 구분하면 정보통신망서비스와 정보유통서비스로 나뉜다. 정보통신망서비스사업은 정보통신망을 구축하여 회선이용료를 받는 사업이다.

1984년 7월 데이콤(주)가 ‘DACOM-NET’이라는 상품명의 국내 공중정보통신망을 통해 독점서비스를 해 왔으나 통신회선사용에 대한 규제완화에 따라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민간사업자의 참여가 허용되어 서비스 제공업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1991년부터는 일반사업자인 한국통신도 참여하고 있고, 현재는 일정요건을 갖춘 사업자들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자유화의 폭이 대폭 넓어졌다.

정보유통서비스사업은 정보통신망을 통해 정보서비스를 제공하여 정보이용료를 받는 분야로서 1988년 데이컴(주)의 천리안II가 서비스를 개시한 이래 오늘날에는 여러 사업자가 참여하고 있으며 사업규모도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정보검색(information retrieval)이라는 용어는 원래 학술정보와 관련하여 1951년 무어(Moores,C.)가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오늘날의 정보검색은 주로 온라인 검색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특정 정보요구의 해결을 위해 지식의 가공과 처리에 의해 생성되는 정보를 정보 · 통신기술을 이용하여 찾아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정보검색과 관련된 교육은 전통적으로 대학의 문헌정보학과에서 이루어져 왔으며, 산업기술정보원(KINITI)에서도 정보검색 과정을 개설하여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1996년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CCPAK) 주관으로 인터넷과 전문정보에 대한 정보검색사 자격시험이 처음으로 시행되었으며 오늘날에는 교육소프트웨어진흥센터(ESPA), 한국능률협회(KMA), 한국생산성본부(KPC)에서도 일반적인 정보검색사 자격인증 시험을 실시하고 있고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KITA)에서는 2000년부터 기술정보검색사 자격시험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DPC)에서는 정보검색에 관한 기술보급, 전문인력 양성, 각종 연구와 사업 수행, 지식과 경험교환을 목적으로 1997년부터 한국정보검색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정보관리의 필요성을 유발시키는 본질적 조건으로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정보의 성격이 오늘날 조직의 총체적 활동에 결정적이고 전략적인 기능을 하게 되는 자원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정보교환의 필요성에 따라 조직체들의 외부정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되었고, 정보통신의 발전과 더불어 정보가 상품으로 간주될 수 있는 복합적인 국제적 정보시장이 성립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의 자원적 성격은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된다. 하나는 경제적 의미로서 해당 조직의 경영원칙에 따라 관리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용 가능한 잠재적 의미로서의 자원이다.

정보의 조달, 관리, 가공 및 평가는 비쌀 뿐만 아니라 또 점차 증가되는 비용문제와 관계된다. 가장 큰 이유는 정보업무가 정보기술적 수단의 투입에 점점 더 의존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관리는 “정보의 가공과 효율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조직 내부의 관리능력과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조직과 관련된 환경요소의 변화에 관한 정보를 인지하고 수용하며, 관련된 외부 파트너와의 교환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보관리의 대상으로는 조직 내부의 정형적 지식(업무지침 등), 정보 · 통신기술, 지식의 전통적 · 전자적 축적기관 및 유통기관(도서관 등), 정보시장의 정보시스템(온라인 데이터뱅크), 정보시장의 정보전달기관 및 가공기관 등을 들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총체적 사회의 분류는 물품과 서비스의 생산, 분배, 이용 및 고용구조를 규정하는 기준이 무엇인가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농업사회 · 산업사회 · 서비스사회와 같은 표현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표현은 농업사회에서 19세기 산업사회로의 이행과 같은 하나의 경제형태에서 다른 경제형태로 이행하는 것을 서술하기 위한 통시대적 의미로서뿐만 아니라, 어떤 한 사회나 그 경제의 발전 수준을 규정하는 기준으로 삼기 위한 동시대적 관점에서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동시대적 관점에 따라 여러 용어들이 생겨났는데, 그 예로 미디어사회, 여가사회 등을 들 수 있다. 비록 이들 용어에도 국민 총생산 · 총소비 · 고용구조에 여가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진되었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지만, 사실은 거시경제학적 관련성보다는 공공성의 관점에서 전체사회를 지배하는 원칙이 무엇인가를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사회’라는 용어도 여가사회의 경우처럼 공적 · 사적의 모든 생활영역, 경제, 행정, 통치행위에 있어서 정보가 중심적인 것으로 되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공공성과 관련된 의미에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보사회의 구조에 관한 오늘날의 논의에서는 기술적, 경제적, 사회정치적 관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기술적 관점에서는 정보사회를 ‘컴퓨터와 정보통신이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또 미디어 제공 등을 통하여 직업생활 및 일상생활이 규정되는 사회’로, 경제적 관점에서는 ‘국민총생산의 형성에 정보관련 업무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사회’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정치적 관점에서는 ‘정보 · 통신기술과 더불어 가능해진 광범위한 통제와 제약,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작업 분배와 조직을 통해 근대 시민사회의 원칙(예: 주관성, 재산상태, 개인적 사상의 자율권 등)이 유지될 수도 있고, 또는 정보화를 통해 형성되는 탈산업사회적 조건 속에서 근대 시민사회의 원칙들이 결정적으로 변화될 수도 있는 개방적 사회’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들을 종합할 경우 정보사회는 결국 ‘지식자원에 대한 접근 및 전문적, 개인적 행위를 보장하기 위해 정보 · 통신기술에 의한 관련정보의 가공 능력이 모든 사회적 분야의 능동적 상호작용에 결정적인 사회’로 특징지울 수 있다.

이러한 사회의 실현을 사회정치적 목표로 설정할 경우, 정보와 관련된 경제 분야와 정보시장은 혼자서 독립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통해 통제된다. 여기에 전체 사회를 고려할 수 있는 정보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시장구조와 정치적 통제기관을 규정하는 척도는 이들이 얼마만큼 이 목표를 지원하는가가 된다.

정보정책의 영역은 크게 연구개발영역, 생산영역, 서비스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연구개발영역의 정책과 관련된 국내의 주요 기관으로는 국무총리실 산하의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등이 있으며, 생산영역의 정책의 경우 일반적으로 하드웨어 분야는 산업자원부, 소프트웨어와 통신망 분야는 정보통신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서비스 영역의 주요 수행기관으로는 과학기술정보서비스의 경우 국무총리실 산하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과 교육부의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있다.

도서관 분야의 정보서비스는 문화체육부에서 국립중앙도서관을 관할하고 있으며, 공공도서관은 내무부와 교육부의 소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일반정보 및 전문정보 서비스의 진흥정책은 정보통신부 산하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DPC)와 한국멀티미디어콘텐츠진흥센터(MMC) 등의 사업을 통해 이루어진 바 있다.

매스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정보서비스 정책은 1998년도 정부부처 개편에 따라 그 동안의 공보처 관할에서 정보통신부로 이관되었다.

참고문헌

『정보화백서』(한국전산원, 1999)
『데이터베이스백서』(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 1999)
『정보학의 이해』(이영자·이경호, 인쇄마당, 1998)
『정보사회론』(신윤식, 데이콤, 1992)
「포스트모던 사회의 정보전달구조에 관한 연구」(고영만, 『창사이춘희교수정년기념논총』, 1993)
Informationsmarkt(R. Kuhlen, Konstanz; UVK, 1996)
Multimedia-Mythen, Chancen und Herausforderungen-(U. Riehm & B.Wingert, Karlsruhe; Bollmann Verl., 1995)
Informationssoziologie(G.Wersig, Frankfurt. M;Athen○um, 1973)
Information uber die Information(H. Seifert, Munchen; C. H. Beck, 1968)
Kybernetik(N.Wiener, Dusseldorf;Econ, 1963)
The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C.E.Shannon & W.Weaver, Chicago;Univ. of Illinois,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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