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린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응양군상호군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68년(공민왕 17)
본관
평양(平壤)
출생지
평양부 상원군(祥原郡: 지금의 평안남도 중화군)
주요 관직
응양군상호군
관련 사건
신돈(辛旽) 제거 모의
정의
고려후기 응양군상호군을 역임한 관리. 무신.
개설

본관은 평양(平壤). 평양부 상원군(祥原郡: 지금의 평안남도 중화군) 출신. 자의도첨의사사(咨議都僉議司事) 조인규(趙仁規)의 손자로, 찬성사 조연(趙璉)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360년(공민왕 9)에 안우(安祐) 등과 함께 홍건적을 토벌하여, 1363년 전 호군으로 1등공신이 되었다. 이어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이 되어 강화도 교동(喬桐)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하여 공을 세웠다.

당시에는 신돈(辛旽)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신돈에게 아부하였으나, 조린은 한 번도 신돈의 문 앞에 가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를 노화상(老和尙)이라고 흉보았다.

1367년 지도첨의(知都僉議) 오인택(吳仁澤), 전시중(前侍中) 경천흥(慶千興)삼사좌사(三司左使) 김원명(金元命) 등과 함께 신돈을 제거하려다가 판서(判書) 신귀(辛貴)의 밀고로 발각되어 남쪽 변방에 유배되고, 가족은 관노가 되었다. 그 뒤 다시 밀직 김정(金精)과 함께 신돈을 죽이려다 실패하였고, 1368년 귀양 간 곳에서 김원명(金元命)과 함께 신돈의 일당인 손연(孫演)에게 살해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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