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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암대통묘(朝宗巖大統廟)

    유교문화재 | 유적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에 있는 조선시대 숭명배청 사상 관련 사당.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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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조종암대통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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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에 있는 조선시대 숭명배청 사상 관련 사당.시도기념물.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경기도 기념물 제28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원병한 명나라에 보은하는 뜻에서 1684년(숙종 10) 명나라 의종의 어필인 ‘사무사(思無邪)’, 선조의 어필인 ‘만절필동재조번방(萬折必東再造藩邦)’, 효종의 비사(批辭)를 송시열(宋時烈)이 직접 쓴 ‘일모도원지통재심(日暮途遠至痛在心)’, 낭선군 우(朗善君俁)주 01)의 친필인 ‘조종암(朝宗嵒)’ 등 22자를 가평 군수 이제두(李齊杜)와 허격(許格)·백해명(白海明) 등이 바위에 새기고 ‘조종암’이라 하였으며, 1804년(순조 4) 기실비(紀實碑)를 세웠다.
    1831년 명나라 9의사(義士)의 후손인 왕덕일(王德一)·정석일(鄭錫一)·풍재수(馮載修)·황재겸(黃載謙) 등이 이곳에 와서 지방유림 등과 함께 조종암 근처에 새로 제단을 만들고, 대통행묘(大統行廟)와 구의행사(九義行祠)라 명칭하였다. 그 후 이곳에서, 매년 음력 1월 4일(명나라 건국일)에는 명나라 태조에게, 1월 6일에는 명나라 9의사에게 제사를 지냈다.
    1874년(고종 11) 유중교(柳重敎)가 문인들과 같이 찾아와서 이항로(李恒老)가 정자를 지으려던 바위에 ‘견심정(見心亭)’이라 새기고, 『조종암지』 편찬을 그 문인 김영록(金永祿)에게 명해 다음해에 완성하였다.
    1876년 김평묵(金平默)·유중교·유중악(柳重岳)·유인석(柳麟錫)·이성집(李聲集) 등이 조종암 근방에 옥계구곡(玉溪九曲)을 정하고 그 곳에 집단 이주, 자양서사(紫陽書社)를 개설하였다. 이 자양서사는 몇 년 후 유중교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면 공전리에 이주하면서 그 곳에 이건, 자양영당(紫陽影堂)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오늘에 이른다.
    1908년 서울 비원 안에 있는 대보단(大報壇)과 괴산 화양동의 만동묘(萬東廟)가 철폐당한 뒤에도 비밀리에 제향을 계속하다가 1934년부터 절사(絶祀)되었다. 1958년 가평 지방 유지의 발기로 옛 터에 다시 제단을 보수하고 음력 1월 4일 대통묘(명나라 태조·신종·의종)와 9의사 제향을 지내고 있다.
    경내의 건물은 대통묘·신문(神門)·조종재(朝宗齋) 등이 있다. 대통묘의 중앙에는 명나라 태조·신종·의종을 주벽(主壁)으로 봉안하고, 동편에는 김상헌(金尙憲)·김응하(金應河)·홍익한(洪翼漢)·임경업(林慶業)·이완(李浣)·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이항로·유인석 등 조선문무(朝鮮文武) 9현을, 서편에는 왕미승(王美承)·풍삼사(馮三仕)·황공(黃功)·정선갑(鄭先甲)·양복길(楊福吉)·배삼생(裵三生)·왕문상(王文祥)·왕이문(王以文)·유계산(柳溪山) 등 명나라 9의사를 종향하고 있다. 제향은 매년 음력 3월 19일에 봉행(奉行)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선조의 손자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풍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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