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5년(인종 23)에 김부식(金富軾)이 『삼국사기』를 진헌하면서 올린 표(表). 『동문선』 권44 표전(表箋)에 수록되어 있으며, 조선 중종조에 간행된 임신본(壬申本, 正德本) 등 조선간본의 『삼국사기』에는 붙어 있지 않다.
이 표는 문체면에서 볼 때 대우문(對偶文)을 많이 쓰고 있으나 변려문체(騈儷文體)라기보다는 고문체(古文體)에 가깝다. 김부식은 이 표에서 인종의 말을 인용, “지금의 학사대부가 오경 제자의 책과 중국사에는 널리 통하면서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는 그 시말을 알지 못하니 유감이다.”라고 하여, 독자적 역사의식에서 『삼국사기』를 편찬함을 밝혔다.
또한, “『고기(古記)』는 글이 거칠고 사적의 누락이 많아 군신의 선악, 신하의 충사(忠邪), 나라의 안위, 인민의 치란(治亂)을 밝혀 권계(勸戒)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다.”라고 지적하여, 『삼국사기』가 고려 초에 성립되었을 『해동삼국사(海東三國史)』 등의 기존 역사서를 감계론적(鑑戒論的)인 입장에서 지양하였으며, 또한 표현 문체도 다듬었음을 밝혔다.
이 표는 부화한 수식을 일삼지 않고 전달내용을 간명하고도 전아하게 표현하고 있어 김부식의 고문 문체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