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서울 선바위 정면
서울 선바위 정면
가족
개념
태아가 모체로부터 완전히 나와 독립 생명체를 이루는 자연현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출생은 태아가 모체로부터 완전히 나와 독립 생명체를 이루는 자연현상이다. 출생은 부모나 가족뿐 아니라, 한 사회의 존속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우리나라는 가계계승을 중요하게 여겼기에 아들의 출생이 매우 중요하였다. 혼인조차도 아들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잉태를 위해서 산신이나 바위 등에 기도하는 등 주술적인 행위에 정성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출산 후에는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백일과 돌 때에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이웃에 떡을 돌려서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음을 알리기도 하였다.

정의
태아가 모체로부터 완전히 나와 독립 생명체를 이루는 자연현상.
개설

우리나라에서는 혼인을 자녀 출산의 수단으로 여겼던 까닭에 혼인한 여성은 아이를 낳는 일을 가장 큰 의무인 동시에 소망으로 생각하였다. 또, 이것은 당사자뿐 아니라 온 문중이 바라는 일이기도 하였다. 특히, 가계 계승자를 얻는 것이 중요한 효도의 한가지였던 조선시대에서는 아들을 낳아야만 후손의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알았다.

심지어 남아 출산을 못하는 여인은 이른바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한 가지를 어긴 것이 되어 시집에서 쫓겨나기 일쑤였으며,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라도 남편이 첩을 두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신부를 고를 때 성품이나 외모 외에 아이, 특히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는가를 미리 알아보기도 하였다.

혼담이 오가면 신랑집에서는 여러 사람을 놓아 신부될 사람의 관상을 보았다. 이의 기준이 되는 것이 이른바 십삼구(十三俱)로서 1766년(영조 42)에 나온 『증보산림경제』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① 눈매가 길고 눈 끝이 젖지 않아야 하고, ② 눈썹이 길고 이마가 펑퍼짐하며, ③ 콧날이 오똑하고 봉눈 같으며, ④ 목소리가 고르고 기(氣)가 족하며, ⑤ 피부가 광택이 나고 향취가 있으며, ⑥ 살결이 부드럽고 메마르지 않으며, ⑦ 얼굴은 거위벼룩을 닮아야 좋고, ⑧ 어깨가 모나지 않고 등이 두툼하며, ⑨ 손이 봄에 돋아난 죽순 같고, ⑩ 손바닥이 붉으며, ⑪ 젖꼭지가 검고 굵으며, ⑫ 배꼽이 깊고 배가 두툼하며, ⑬ 엉덩이가 평평하고 배가 커야 한다.

이 밖에도 신부의 머리카락이 굵고 푸르고 검은 빛이 돌면 피가 왕성하여 자녀를 많이 낳으리라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외적인 조건 외에 성품 또한 중요시하여 남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원망하지 않으며,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놀라지 않고, 또 기뻐하지도 않는 덕성을 지닌 여성이라야 남아를 낳는 조건을 갖춘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여성은 출산을 하되 반드시 남아를 낳아야 하였으므로 외모나 관상보다 덕성을 더욱 높이 보았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들빌기

여성은 잉태할 수 있는 기간을 헤아리는 교육을 미리 받았고, 혼인한 뒤에는 이를 신랑에게 알려서 합방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봄에는 갑(甲) · 을(乙)이 든 간지날(干支日)에, 여름에는 병(丙) · 정(丁), 가을에는 경(庚) · 신(辛), 겨울에는 임(壬) · 계(癸)가 든 간지날이 가장 좋으나, 다만 경도가 끝난 지 엿새 안에 든 날을 헤아려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손가락마디를 짚어가며 셈하는 까닭에 아들을 못 낳은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너는 손가락마디 하나 제대로 세지 못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혼인 뒤 여러 해가 지나도 아이를 낳지 못하면 당사자는 물론, 온 가족이 근심에 싸인다. 더욱이, 남자가 장손이거나 여러 대를 이어 독자인 경우에는 친척들도 무심할 수가 없다.

이 때에 자녀를 낳기 위하여 명산대천(名山大川)에 가서 빌거나 여러 가지 주술을 베푼다. 먼저 본인이 자신의 출산력을 얻기 위해 달힘마시기[吸月精]를 한다. 음력 초열흘부터 보름까지 닷새 동안, 달이 점점 커질 때 갓떠오르는 달을 마주 바라보고 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이렇게 하면 우주의 음기(陰氣)를 낳는 달의 기운이 몸속에 들어와 출산력이 강해져서 아들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이 달힘마시기는 보통 세 숨통, 다섯 숨통, 일곱 숨통 등 홀수로 하며, 한 사람이 옆에 서서 박자에 따라 세어 준다.

이를 혼인 전날 밤 달이 떠오를 때, 중천에 이르렀을 때 그리고 달이 질 때 세 번 거듭하는 일도 있고, 상류층에서는 달힘을 먹인 다음 혼인시키려고 그 날짜를 달이 부푸는 보름 전후로 잡기도 하였다. 달의 힘을 보존하기 위하여 정월대보름날 개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풍습도 지켰다. 이날 개가 밥을 먹으면 힘이 더욱 강해져서 그 집 안주인이 마셔야 할 달힘을 개가 먹어 버린다고 믿었던 것이다.

민간에서는 월식(月蝕)도 ‘개가 달을 베어먹은’ 현상으로 여긴다. 이 밖에 고추 · 달걀 · 수탉이나 황소의 생식기 등 특정한 음식을 먹으면 남아를 낳는다는 관념도 있었으며, 심지어 석불이나 망부석, 돌미륵 따위의 코를 문질러서 그 가루를 마시기도 하였다. 이 가루는 비고산(鼻高散)이라는 이름이 붙어 밀매되었고, 아이를 못 낳는 부인들은 이를 구하는 데 필사적이었다.

비고산은 남자들에게 강신제 구실을 하고 여성에게는 보음(補陰)의 효과가 크다고 여긴 까닭이다. 이 돌가루를 마시는 풍속은 전형적인 유감주술(類感呪術)로서 석불의 코를 남성의 성기로 여긴 데에서 왔다.

상류층 부인들은 은도끼나 쇠도끼를, 서민층에서는 나무도끼를 속옷 끈에 차고 다녔다. 또, ‘한 탯줄에 아들 삼형제’라 하여 도끼 세 개를 한줄에 이어 맨살에 닿도록 차는 경우도 있었다. 도끼는 ‘남성이 쓰는 연장인 동시에 남성 그 자체를 나타내는 물건’인 까닭이다. 심지어 남자아이를 많이 낳은 여인의 개짐을 돈을 주고 사거나 몰래 훔쳐서 몸에 지니는 경우도 있었다.

아들을 낳으려고 비는 행위는 장소에 따라 산치성 · 바다치성 · 절치성 · 집치성 등으로 나누며, 비는 날수에 따라 삼일기도 · 칠일기도 · 백일기도 등으로 부른다. 또, 당사자가 혼자 드리는 외에 남편이나 친정 및 시어머니 등 여럿이 함께 치성을 올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을 뿐 아니라, 예로부터 산에 대한 신앙을 가져온 까닭에 산치성이 가장 보편적으로 행하여진다.

산이 명산일 경우 그 산 자체를 치성의 대상으로 삼지만 흔히는 큰 나무나 샘, 그리고 바위에서 빈다. 특히, 바위의 경우 험상 궂고 묘하게 생긴 것일수록 영험이 있다고 여긴다. 서울 자하문 밖의 기자암(祈子巖)이나 인왕산 중턱의 선바위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곳에서 치성을 올릴 때에는 손에 작은 돌을 쥐고 바위에 비비며 “부디 아들을 하나 태워 주소서.”라고 축원한다.

좋은 날을 가려 광목 · 쌀 · 실 그리고 명태를 가지고 산속 바위로 가는 일도 있다. 쌀을 일곱 번 씻어 밥을 지은 다음 이 위에 실타래를 얹어놓고 여러 시간 동안 합장하며 빈다.

바다치성은 산치성에 비하여 간단하다. 제물을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차리고 용왕을 향하여 치성을 올린다. 경상북도 지방에서는 남의 논에서 100개의 이삭을 주워 밥을 짓기도 한다. 절치성은 흔히 큰 법당 뒤에 있는 산신각이나 칠성각에서 올린다.

스님의 지시에 따라 미리 쌀이나 광목 등을 시주하지만, 정성이 지극한 사람은 스님의 옷이나 부처님 방석을 지어 바친다. 절치성은 보통 100일 동안 진행된다.

치성 중에 가장 간단한 것이 집치성이다. 몸을 씻은 다음 새옷으로 갈아입고 상 위에 쌀과 실, 물 따위를 올려 놓고 빈다. 뒤란의 칠성님, 부엌의 조왕님, 우물의 용왕님을 주대상으로 삼으나 삼신할머니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 밖에 무당에게 치성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제주도에는 아이의 출생을 위한 불도맞이굿과 수륙제가 성행한다. 수륙제는 ‘삼신할망본풀이’라 부른다.

무당이 아이낳기를 바라는 사람의 집으로 와서 경을 외우거나 푸닥거리를 할 때에는 당사자가 옆에 서서 손을 비비며 소원을 말한다. 덕을 쌓거나 선을 베풂으로써 신의 감동을 얻어 아기를 낳게 되리라는 관념도 있었다. 이의 대표적인 것이 겨울에 찬 냇물을 건너다니는 사람들을 위하여 다리를 놓는 ‘노두놓기’이다.

다리로 건너는 사람마다 복을 빌어 주는 결과로 소원을 이루리라고 믿는다. 이 밖에 동네 길을 고치거나 어려운 이를 열심히 도왔으며, 심지어 새끼 밴 개가 더위를 먹어 고생할 때 부채질을 해주며 “나도 새끼 배게 해다오.” 하였다.

이와 같이 해서도 임신을 못하는 경우에는 ‘씨받이’라 하여 남의 몸을 빌렸다. 신분이 낮거나 가난한 과부로서 아들 낳을 상을 지녔거나 아들을 많이 낳은 경험이 있는 여성이 대상이 된다. 은밀하게 흥정이 이루어지면 여인의 월경일과 길일이 합쳐지는 날을 골라 단자(單子)를 보낸다. 합방하는 날 여인은 소복재계하고 삼신에게 빈 다음 방으로 들어간다.

이때 아이를 낳지 못한 본부인이 장지문 밖에서 대기하거나 무당이 경을 읽기도 한다. 태기가 있어 단자를 보내면 가마에 태워 남자집으로 데려오며 아기를 낳을 때까지 바깥 출입을 금지시킨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만약, 딸을 낳으면 땅이나 곡식을 주어 생모가 기르도록 하였다. 아들인 경우에는 평생 자기 아이임을 나타내서는 안 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아이를 못 낳는 원인이 남편에게 있을 때에는 ‘남자’를 빌리는 ‘씨내리’ 기습(奇習)도 있었다. 특히, 종가의 경우 양자를 들일 조건조차 마땅하지 않으면 남편의 묵인 아래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외간 남자와 몸을 섞는 것이다. 흔히 떠돌이장수에게 후한 댓가를 주어 대상으로 삼았다.

몸에 외간 남자의 손길만 스쳐도 그 부위를 도려내거나 잘라야 하였던 조선조의 엄중한 도덕률과는 상치되는 것이지만, 대를 잇는다는 명분이 더욱 중요하였기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높은 가문의 귀부인인 경우 아이를 낳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많았다. 씨내리 풍속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도 있었다.

공민왕 때 밀직부사였던 허유(許猶)는 첩에게 씨내리 행위를 강요한 다음 질투에 못이겨 그녀의 귀를 자르고 눈을 송곳으로 쪼았으며, 당사자였던 자기 집 종의 눈알을 파내고 코에 고삐를 꿰었다는 기록이 『고려사』 열전에 보인다. 씨받이나 씨내리나 모두 비인간적인 광적 행위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태교와 금기

잉태가 이루어지면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하여 언행을 조심하는데 이것이 태교이다. 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정몽주(鄭夢周)의 어머니 이씨(李氏)가 남긴 『태중훈문(胎中訓文)』이며, 조선시대 중엽의 명의였던 허준(許浚)『동의보감』에 부분적으로 소개하였다.

이 밖에 아동교육서인 『소학』을 비롯하여 이이(李珥)『성학집요(聖學輯要)』, 그리고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남긴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같은 내용이 보이며, 1937년 사주당(師朱堂) 이씨(李氏)가 펴낸 『태교신기(胎敎新記)』는 이에 관한 본격적인 지침서라 할 것이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아버지의 태교를 강조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 일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 특히 잉태시 부친의 청결한 마음가짐은 모친의 열 달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 부부는 날마다 공경으로 서로 대하고 예의를 잃거나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며, ……몸에 병이 있거나 집에 근신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 기간은 합방을 금하고 …… 헛된 욕망이나 요망스럽고 간악한 기운이 몸에 붙지 않게 하는 것이 자식을 가지는 부친의 도리이다. …… 그러므로 아기의 지각이 밝지 못함은 부친의 탓이다. …….”

이와 비슷한 내용은 『동의보감』에도 보이는데, 장차 태어날 아이의 성품은 물론, 한 가정의 길흉화복조차도 아버지의 마음가짐에 좌우된다고 하였다. 민간에서도 부인이 임신하면 남편은 살생을 금할 뿐 아니라 산이나 들의 나무줄기조차 꺾지 않았으며, 땔감을 마련할 때에도 낫이나 도끼를 대지 않았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

이처럼 아버지의 태교가 강조되기는 하였지만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태교는 어머니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것은 물론이다. 특히, 상류층 부인들은 고귀한 기품을 지닌 물품을 가까이 두고 쳐다보거나 어루만지면서 그 기품이 태중의 아이에게 깨쳐지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이러한 물품으로는 귀인의 초상화 · 흰옥 · 공작 · 신선의 그림 · 관대(冠帶) · 흉배 · 봉황 · 주옥 따위를 꼽았다.

임신부는 음식을 가려먹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예컨대, 오리고기를 먹으면 아기의 손이 오리발처럼 되고, 토끼고기를 먹으면 눈이 토끼눈처럼 붉으며, 상어고기는 피부를 거칠게 만든다고 여겨서 절대로 먹지 않았다. 또, 돼지고기는 부스럼을 자주 일으키며, 달걀은 종기의 원인이 되고, 꿩고기는 목숨을 단축시키며, 쇠뼈는 광대뼈를 튀어나오게 한다고 믿었다.

한편, 임산부에게 적극 권장한 식품도 적지 않았다. 잉어를 먹으면 아기가 단정한 모습으로 태어나고, 황소 콩팥과 보리밥은 힘이 세고 슬기롭게 만들며, 가물치는 총명이 깃들게 한다고 여겼다. 가물치는 현재도 임산부에게 좋은 식품으로 손꼽힌다.

음식에 대한 이와 같은 관념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음식을 함부로 들지 않음으로써 임산부와 태중의 아이가 건강을 유지하며 무엇보다 정서적인 안정을 얻어 아이의 성품형성에 좋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한편, 권장식품은 임산부의 영양공급에 큰 구실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임산부가 조심해야 할 약도 수십 가지에 이르며, 보거나 들어서는 안 되는 일과 삼가거나 금해야 할 일은 하나하나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또, 몸가짐을 바르게 가지라는 교훈도 적지 않다. 말고삐 · 체 · 부삽 · 도마 따위를 넘지 말고 시루나 독을 들지 말며, 빗자루를 깔고 앉지 말라는 따위이다.

이 밖에 산달에 아궁이나 굴뚝을 고치면 아기가 언청이로 태어나고, 문구멍을 바르면 난산을 하며, 빨래를 삶으면 피부가 나빠진다고 여긴다. 이와 같은 관습은 임산부의 건강을 유지시키려는 목적 외에 유감주술적인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태몽과 태점

이미 설명한 대로 여성은 반드시 남아를 낳아야 하였으므로 임산부는 태아가 아들인가 딸인가를 가장 궁금하게 여겼다. 이것을 미리 알 수 있는 것이 태몽(胎夢)으로 아이의 성별뿐만 아니라 운명까지 좌우한다고 믿었다. 태몽은 임신중이나 출생 직후에 많이 꾸며, 이를 꾸는 사람은 임산부를 비롯하여 남편이나 시집 및 친정 식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이웃이나 노비가 대신 꾸는 일도 있었다.

『삼국사기』원효(元曉)의 어머니가 유성(流星)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정몽주의 태몽이 난초였던 까닭에 아명(兒名)이 몽난(夢蘭)이었다. 또, 이이의 어머니는 검은 용의 태몽을 꾸어 아명을 현룡(見龍)으로 삼고 산실을 현룡실이라고 이름붙였다.

일반에서는 해나 달을 삼키거나 몸에 지니는 꿈, 그리고 용 · 범 · 구렁이 · 소 · 돼지 · 장닭 · 장끼 등의 동물과 호박 · 가지 · 무 · 고추 · 호두 · 송이버섯 · 밤 따위의 식물에 관한 꿈이면 아들을 낳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한편, 암소 · 고양이 · 말 · 암탉 · 뱀 등과 감 · 참외 · 수박 · 애호박 · 꽃 따위는 딸 꿈이다. 이와 같은 동식물들은 남녀의 성격은 물론 성기와 관련된 상징물이기도 하다.

태몽은 임신부가 언제나 아이를 생각하고 가족들도 지대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하겠다. 태점(胎占)이라 하여 태아의 성을 미리 알아보는 방법도 널리 시행되었다. 곧, 임신부의 배가 뾰족하게 부르거나 입덧이 심하면 딸, 배가 높지 않고 펑퍼짐하고 입덧이 거의 없으면 아들이다.

또, 부부의 나이를 더해서 홀수가 되면 남아이고 짝수이면 여아이다. 임산부를 남쪽으로 걷도록 하고 뒤에서 갑자기 불러서 왼쪽으로 돌아보면 남아,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여아이다. 대개 남태는 왼쪽에 있으므로 머리도 왼쪽으로 돌아간다고 여긴 것이다. 태아가 여아로 판단된 경우 이를 남태로 바꾸는 비법도 썼다. 이에 관한 내용은 『동의보감』 · 『규합총서』 · 『조선박물지(朝鮮博物志)』 등에도 보인다.

가장 흔한 것이 한약복용으로 『동의보감』에는 임신 3개월까지는 남녀가 확정되지 않아 복약과 방술을 베풀어 여아를 남아로 바꿀 수 있다고 하였다. 민간에서는 임신에서 출산까지 임산부가 계속 왼쪽으로 누워 자거나 고추를 많이 먹거나 심지어 남이 꾼 남아태몽을 돈으로 사면 사내아이를 낳으리라 여겼다. 또 도끼나 수탉의 긴 꼬리 세 개를 임산부 모르게 침상 밑에 두는 비법도 썼다. 이 밖에 아들을 낳은 산모가 먹는 첫국밥을 얻어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신도 있었다.

산바라지

산달을 앞둔 집에서는 그 준비에 바쁘다. 창호지를 새로 바르는 등의 방치장을 하는 한편, 포대기 · 기저귀 · 배내옷 · 솜 따위를 마련한다. 이와 같이 아기의 살에 직접 닿는 물품들은 면직물로서 습기를 잘 빨아들이고 부드러운 것이 좋다. 흔히, 첫 아기의 포대기는 친정에서 해주며, 아기 물품을 살 때는 값을 깎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이를 깎으면 아기의 복을 깎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입는 배내옷은 첫 목욕을 시킨 뒤 바로 입히거나 사흘 뒤에 입힌다. 이 옷은 바늘로 꿰매며 단추를 달지 않고, 긴 끈을 붙여 가슴에 한 바퀴 돌려 맨다. 단추 대신 긴 끈을 쓰는 것은 아기의 수명이 그만큼 길기를 바라서이다. 포대기는 반드시 해산 전에 만들어두어야 한다. 아기가 태어난 뒤에는 부정을 타기 때문이다. 해산일이 가까워지면 산바라지도 정해 둔다.

이 일은 주로 친정이나 시집의 어머니가 맡으나, 해산 경험이 많고 아이들을 모두 무사히 키운 복많은 노인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양가의 어머니는 출산경험도 있을 뿐 아니라, 손자녀를 얻는 기쁨도 겹쳐서 정성을 다하여 산모와 아기를 돌보기 때문이며, 복을 누리는 노인은 그 복이 아기에게도 끼쳐지기를 바라서이다. 따라서 산바라지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거나 많이 낳았으나 기르지 못한 박복한 사람에게는 절대로 맡기지 않는다.

복많은 할머니는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해산을 돕게 마련이며, 속옷이나 버선 따위를 보수로 받는다. 옷을 해주는 것은 노인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있다.

남자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가정형편에 따라 후한 대접을 하는 것이 상례이다. 산실 윗목에 깨끗한 짚을 깔고 쌀 · 물 · 미역 따위가 놓인 삼신상을 둔다. 곳에 따라 밥과 미역국을 소반에 올려놓고 순산을 빌기도 한다.

삼신은 아이를 배게 하고 낳게 하며, 아이가 자라나는 것을 돕는 신이다. 이 신은 한 집에 한 분뿐이므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산달이 같으면 며느리는 반드시 친정으로 돌아가서 아이를 낳는다.

순산한 뒤에는 삼신에게 바쳤던 쌀과 미역으로 밥과 국을 지어 산모에게 먹인다. 곳에 따라 산모가 달걀이나 메밀수제비를 먹게 한다. 닭은 알을 잘 낳을 뿐 아니라 메밀수제비처럼 미끄러워서 순산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한편, 농가의 남편은 아내의 산달이 가까워 오면 삼으로 왼새끼를 꼬아 둔다. 산실에 밧줄처럼 매어 놓아서 임산부가 이를 잡고 힘을 쓴다. 곳에 따라 이 줄(삼신끈이라고 한다.)을 황소 오줌에 적셔 두면 주력(呪力)이 생긴다고 한다. 조선조의 왕실이나 상류층 임산부는 문고리에 걸어둔 은제말굽쇠를 잡고 힘을 썼다. 그리고 아이 돌에 이르러 이를 녹여 말굽 모양의 노리개를 채워 준다.

아들을 낳았을 때 잡았던 삼신끈은 아이를 못 낳았거나 아들을 바라는 여인에게 인기가 높아서 비싼 값에 팔린다. 삼신끈 대신 남편의 상투를 잡고 힘을 쓰는 기이한 풍속도 있었다. 창호지를 뚫고 들여민 상투를 임산부인 아내가 잡는 것이다. 상투가 지나치게 짧거나 남편이 너무 늙어서 빈약한 경우에는 가발로 만든 상투를 턱에 걸고 산모가 잡게 한다. 이를 ‘상투빌기’라 한다.

평안북도 박천에서는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면 남편이 산실 지붕에 올라가 용마름을 붙들고 비명을 지르며 나뒹군다. 남편이 아내의 산고(産苦)를 함께 나누는 풍속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이를 쉽게 낳게 되며, 분만을 방해하는 잡귀가 남편쪽으로 들어붙어 산모와 아이가 안전을 누리게 되고, 남편이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임산부가 아기를 쉽게 낳지 못하고 난산(難産)이 계속될 때에는 여러 가지 주술을 베푼다. 남편의 허리띠를 산모 허리에 둘러 주기, 남편 옷 덮어 주기, 아이들 많이 낳은 부인의 치마 덮어 주기, 털어낸 참깨대 묶음을 방 네 구석에 세우기, 우물에 가서 동이에 물을 가득 채운 다음 쏟아 버리기, 대문 빗장에 톱질을 하여 그 가루 먹이기, 불 지핀 아궁이에 부채질을 해서 연기를 빨리 빼기, 쥐구멍 터주기 따위이다.

이 밖에 구멍 뚫린 치마에 오이 따위를 내려뜨리며, “헌 치마에 외 빠지듯 순산시켜 주시오.”라고 읊조리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모두 안산(安産)을 위한 유감주술이지만, 효과가 없다고 생각될 때에는 가학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였다. ‘쇠단근질’이 그것이다.

헌 솥뚜껑을 데지 않을 만큼 불에 달구어 진통하는 산부를 이 위에 올려 세운다. 그리고 발을 옮겨 딛지 못하도록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각기 한 발씩 집고 눌러 준다. 그러면 임산부의 모든 신경은 뜨거운 발바닥에 집중되는데 그 결과 발바닥의 힘줄이 하복부에 작용한다. 임산부는 이를 이용, 더욱 힘을 주어 아기를 밀어내게 된다는 것이다. 겨울에는 쇠단근질 대신 얼음을 쓴다.

아기가 태어나면 산바라지는 먼저 그 시간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탄생시간이 장래 운명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가 첫 울음을 울기 전 손가락에 풀솜이나 비단을 감고 입속에 넣어 좁쌀알갱이라 하는 더러운 물질을 닦아낸다. 이렇게 하면 아기가 무병하게 잘 자란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일종의 해독법(解毒法)이다. 『동의보감』이나 『규합총서』에도 아기가 일찍 죽는 원인 가운데 좁쌀알갱이를 제거하지 않은 점을 들고 있다.

태의 처리

탯줄을 자르는 일(이를 삼갈기라 함)은 조심스럽게 하여야 한다. 탯줄을 잡고 아기쪽으로 훑은 다음 배꼽에서 한 뼘쯤 되는 부분을 자르고 그 끝부분을 실로 잡아매어 깨끗한 솜에 싸서 아기 배 위에 올려놓는다. 태는 흔히 가위로 자르지만 여아가 태어났을 때에는 동생이 남아이기를 바라는 뜻으로 소독한 낫이나 식칼을 쓴다.

남아인 경우에는 낫이나 식칼 외에 산모가 이로 끊고 그 침을 삼키는데, 이렇게 하면 아기가 무병장수한다고 여긴다. 태는 짚이나 종이에 싸고 삼신상 아래 두지만, 이를 귀하게 여기는 집에서는 일진에 맞추어 좋은 방위에 놓아 둔다. 이 방향을 장태방(藏胎方)이라 한다. 태는 보통 사흘이 지나기 전이나 사흘째 되는 날 처리하며, 그 방법은 곳에 따라 다르다.

서울에서는 태를 왕겨나 참숯 또는 장작불에 태워서 깨끗한 물에 띄우거나 산에 묻으며, 경기도에서는 삼을 찌는 날 잿불에 바짝 태운다. 이를 태우는 장소가 집에서 먼 곳이면 동생 터울이 길고 가까우면 짧으리라 한다. 강원도에서는 술이 담긴 작은 단지에 태를 넣어 땅에 묻었다가 5, 6년 뒤에 꺼낸다.

태가 녹아 술이 노란 빛깔로 바뀐 것을 간질병이나 폐병 약으로 쓴다. 전라남도 고흥일대에는 마을마다 일정한 장소가 있는데, 남아의 태는 항아리에 넣지만 여아의 그것은 바가지에 담아 묻는다. 제주도에서는 삼거리 노상에서 태운 다음 그릇에 넣어 봉한 뒤 물에 띄운다. 또 이곳에서는 태를 말려두었다가 어린이 머리에 종기가 났을 때 가루를 내어 기름에 버무려서 발라준다.

한편, 배꼽은 불이 센 아궁이에 던지거나 해가 뜰 때 굴뚝에 넣거나 깨끗하게 말렸다가 아기가 병에 걸렸을 때 불에 달여 먹인다. 이렇게 하면 병이 쉽게 낫는다는 것이다.

금줄

아기가 태어나면 한이레 또는 세이레 동안 대문에 금줄을 쳐 둔다. 출산을 외부에 알려서 외인(外人), 특히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이다. 남아인 경우에는 줄에 붉은 고추와 숯덩이를 끼워두며, 여아는 미역 · 솔잎 · 종이 따위를 달아둔다. 그러나 사람을 속이면 아기에게 좋다고 하여 남아가 태어났음에도 여아를 나타내는 물품을 달거나 여아인 경우 남자 동생을 보라는 뜻에서 반대 금줄을 치기도 한다.

금줄은 반드시 왼새끼로 꼬며 양 끝을 자르지 않는다. 왼새끼는 잡귀를 쫓기 위해서이며, 양 끝을 그대로 두는 것은 아기와 산모의 수명이 끝없이 길기를 바라서이다. 또 붉은고추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며, 붉은 기운 또한 잡귀를 물리친다고 여긴다. 한편, 숯은 제독(除毒)의 뜻이 담겨 있고 솔잎의 색상인 녹색은 여성을 나타내는 빛으로서 자라서 바느질을 잘 하리라 여긴다.

이 줄이 걸린 동안에는 가족 가운데 개 잡는 것을 보거나 상가에 다녀온 사람은 산실에 들어가지 않는 등 몸가짐을 조심한다. 이를 어기면 아기에게 붉은 반점이 돋아난다. 기간이 지난 금줄은 아무곳에나 버리지 않고 걷어서 문 안쪽 기둥 높은 곳에 감아 두었다가 태운다. 또, 금줄을 걸기 위하여 기둥에 못을 박으면 아기가 장님이 된다고 믿는다.

젖먹이기

갓태어난 아기는 따뜻한 물에 적신 풀솜으로 닦아준다. 『동의보감』에는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를 삶은 물이 좋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복숭아 가지는 잡귀를 물리치는 데에 효험이 있고, 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이어서 왕성한 생명력을 갖추었다고 생각되었다.

한편, 삼신상의 쌀과 미역으로 밥과 국을 끓여 다시 상에 올려놓고 빈 다음 산모가 먹는다. 이것이 ‘첫국밥’으로 고기를 넣지 않으며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산모는 찬바람을 쐬지 않도록 조심하며, 음식 또한 삼가한다. 무김치는 이를 상하게 하고, 냉수는 부종의 원인이 되고, 생선은 회복을 늦추며, 닭고기는 젖에 해롭다.

사흘째 되는 날 산모는 쑥을 달인 물로 몸을 씻으며, 아기도 첫 목욕을 한다. 이날은 머리부터 씻겨 내려가고, 다음날은 발부터 씻겨 올라온다. 그리고 이후로는 위아래 방향을 하루씩 바꾼다. 아기의 균형성장을 위해서이다. 오늘날에는 거의 매일 목욕을 시키지만 예전에는 첫이레와 두이레, 그리고 세이레에 한하였고, 세이레가 지난 뒤부터라야 매일 씻겼다.

외기에 자주 노출되는 것을 해롭게 여긴 까닭이다. 산모는 젖이 잘 나게 하려고 돼지족이나 쇠족, 그리고 닭 · 붕어 · 가물치 · 곶감 · 대추 따위를 고아 먹으며, 삼신에게 빌기도 한다. 이 밖에 젖가슴을 뜨거운 수건으로 문질러서 초유(初乳)가 나오는 것을 돕고, 젖꼭지가 안으로 쏙 들어간 경우에는 반으로 쪼갠 호도 껍질을 덮어 누르면 튀어나온다.

젖은 반드시 왼쪽으로 안고 먹인다. 왼쪽은 잡귀를 쫓는 방향일 뿐 아니라, 아기를 이렇게 안으면 오른손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어 편리하다. 이런 까닭에 예전 부인네들은 왼쪽 젖이 유난히 컸으며, 이를 ‘짝젖’이라 불렀다. 왼쪽 젖을 먹을 때 아기는 어머니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게 되므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다고도 한다. 한편, 생모의 젖이 모자라는 경우에는 젖어머니라 하여 젖이 풍부한 부인을 정해 두고 먹였다.

장수를 위한 습속

아이의 무병과 수명장수를 위하여 절이나 큰 바위에 팔거나 무당을 어머니로 섬기게 하는 풍속도 있었다. 절에 보낸 아이가 승려와 함께 지내며 불공을 드리면 부처의 도움으로 재앙을 물리치게 된다는 것이다. 바위는 단단하고 굳세며 변하지 않으므로 이를 닮아 수명장수를 누리라는 뜻이다. 이 경우에는 명절에 바위를 찾아가 절도 한다.

무당에게는 아이의 생년월일 · 이름 · 주소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글을 적은 명주 또는 무명천(너비 60㎝, 길이 3m 정도)과 실타래를 바친다. 이 천이 명다리로서 이때부터 아이는 무당의 신아들이나 신딸이 되고 무당은 아이의 신어머니 구실을 한다. 무당은 자신의 신당굿을 할 때 반드시 명다리를 가지고 춤을 춘 다음 아이의 건강을 빌어 준다. 부모들은 이따금 무당에게 사례를 건네며 명다리를 새로 마련하여 바친다.

아이의 명이 길어지기를 바라서 아명(兒名)을 따로 지어 부른다. 개똥이 · 쇠똥이 · 말똥이 따위가 그것으로 천하고 더러운 이름을 붙임으로써 잡귀가 달라붙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또, 아이를 지나치게 귀여워하거나 자랑하는 일도 삼가하였으며, 오히려 잘 생기고 귀여운 아이일수록 ‘밉게도 생겼네’ 또는 ‘못생긴 녀석’이라고 거꾸로 불렀다. 이 밖에 돌쇠 · 바위 · 꺾쇠라는 이름도 흔하였는데, 아이의 수명이 그처럼 길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풍속은 유아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예전에 유행된 것으로, 부모의 심리적 불안을 덜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였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자연히 아명은 부르지 않게 된다. 아기의 처음 자란 머리를 ‘배냇머리’라 한다. 이 머리는 백일이나 돌 무렵에 가위로 깎으며, 모두 깎지 않고 서너 가닥 남기는 수도 있다. 아기의 수명을 바라서이다.

깎은 머리는 아궁이에 넣어 태운다. 한편, 손톱과 발톱은 삼칠일이나 백일이 지나서 깎는다. 이 동안 얼굴 상처를 막기 위하여 배냇저고리 소매를 길게 해서 손까지 감싸 둔다. 손톱이나 발톱은 가위 따위의 쇠붙이로 깎으면 아이에게 해롭고, 자라서 손버릇이 나빠진다고 여겨서 산모가 이로 짧게 해주는 경우도 있다.

의례

아기가 태어난 뒤 7일째를 첫이레, 14일째를 두이레, 21일째를 세이레라 부르고, 그때마다 특별한 의례를 치른다. 7일을 하나의 단위로 삼아 특별한 뜻을 부여하는 풍속은 예로부터 지켰던 것으로, 3이나 7을 좋은 수로 여긴 까닭이다. 단군신화에 따르면, 뒤에 단군할아버지의 어머니가 된 곰도 세이레 동안 굴에서 지냈다.

첫이레는 삼신상을 차려 놓고 삼신에게 감사하는 동시에 아기의 명을 빈다. 또 이 날 아기의 쌀깃[襁褓]을 벗기고 깃 없는 옷을 입히며, 동여매었던 소매끝도 풀어 준다. 할아버지는 이날 처음으로 손자를 보게 된다. 이로써 아기는 가족과 첫대면을 하는 셈이다. 이웃과 친지에게 특별한 음식을 대접하는 외에 아기에게 실꾸리를 채워 주거나 곁에 놓아둔다. 실은 장수의 상징물이다.

두이레날에도 삼신상을 마련하는 집이 있으나 보통은 상을 차리지 않는다. 깃이 달린 웃옷에 두렁이를 입히고 나머지 소매끝마저 풀어서 아기는 마음대로 활갯짓을 한다. 이레 가운데 가장 성대한 의식을 치르는 것이 세이레, 곧 삼칠일이다. 삼신상을 차려 마지막 감사를 드리고 금줄을 걷으며 산모나 아기, 그리고 가족이 그동안 지켜야 했던 모든 금기도 풀어진다.

아기에게 위아래 옷을 갖추어 입히며, 산모는 일상생활로 완전히 되돌아온다. 이웃과 친지에게 특별한 음식을 대접하며 수수떡과 소를 넣지 않은 만두를 빚어 문 앞에 놓아서 오가는 사람에게 풀어먹인다. 수수떡의 붉은 빛깔은 잡귀를 물리치고, 빈 만두는 아이의 도량이 넓어지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실타레나 건강하게 자란 아이옷을 선물하며, 첫 아기인 경우 외가에서 옷과 포대기 · 띠 · 미역 · 실 따위를 가져와 아이와 첫 대면을 한다. 이날로써 해산에 따른 모든 의례가 마감된다. 아기가 태어나 100일째 되는 날도 특별한 의미를 붙여서 이른바 ‘백일잔치’를 베푼다. 첫이레에서부터 세이레까지의 의례가 유아보다 산모에 치중된 것이라면 백일잔치는 아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아기를 무사히 키우기가 어렵던 예전에는 100날을 넘기면 위험한 고비를 벗어났다 여겨서 이를 자축하는 잔치를 벌인 것이다. 삼신상을 차리며 이날부터 색깔이 있는 옷도 입힌다. 백설기 · 수수팥떡 · 인절미 · 송편 따위를 만들어 손님을 대접하고 이웃에도 돌린다. 또, 100조각의 헝겊으로 지은 옷을 아기에게 입히기도 한다. 작은 천조각을 기워 만든 옷이므로 아이의 수명도 길게 이어질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아기의 첫 생일인 돌날에도 여러 가지 의례를 베푼다. 아침에 삼신상을 차려 아기의 수명복락을 기원하며, 아기에게 화려한 옷을 입힌다. 남아는 보라색이나 회색 바지에 분홍 또는 색동저고리를 입는다. 이 위에 색동 두루마기, 남색 조끼, 색동 마고자 차림을 하고 전복에 홍실띠(紅絲)를 두르며, 복건을 쓰고 타래버선을 신고 주머니를 찬다.

여아는 색동저고리에 붉은색 긴 치마를 입고 조바위를 쓰며, 역시 타래버선에 주머니차림을 한다. 주머니에는 붉은 실로 壽福貴(수복귀) 세 글자를 수놓고, 이 밖에 국화나 모란 또는 동물형태의 수도 놓아 꾸민다.

그리고 주머니 끈에 작은 타래버선 · 은도끼 · 은나비 · 은장도 · 은자물통 따위를 달아 준다. 이들은 잡귀 퇴치 외에 아기에게 수명장수를 가져다 준다고 여긴다. 한편, 남녀 모두 돌띠를 두른다. 이것은 매우 길어서 허리에 한번 감아서 매는데 역시 명이 길기를 바라는 뜻이 있다.

돌떡으로 백설기 · 수수경단 · 인절미 · 송편 · 무지개떡 · 계피떡 등을 만들어 이웃과 친지에게 돌리며, 떡을 받은 집에서는 아기의 명과 복을 비는 의미로 실 · 돈 · 옷 · 반지 · 수저 등을 떡 그릇에 담아 보낸다.

돌잔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돌잡이이다. 돌상에 여러 가지를 차려 놓고 아기가 집어드는 물품에 따라 장래가 결정된다고 믿는 풍속이다. 남아 상에는 활 · 실 · 책 · 붓 · 먹 · 종이두루마리 · 쌀 · 대추 따위를, 여아 상에는 쌀 · 먹 · 종이 · 실 · 국수 · 자 · 칼 · 바늘 · 가위 따위를 놓는다.

상 앞에 무명 피륙 한 필이나 포대기를 접어서 아기를 앉힌다. 먼저 집은 것이 활이면 장차 장군이 되고, 쌀이면 부자가 되리라 한다. 또, 실은 장수를 나타내고, 책 · 먹 · 붓 따위는 학자나 관리가 될 조짐이다. 여아의 경우 자 · 바늘 · 가위를 집으면 바느질을 잘하고, 칼을 잡으면 음식 솜씨가 뛰어나리라 한다. 따라서, 돌상에는 아기의 장래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는 물품만을 놓으며, 부모는 아기의 미래와 연관되기를 바라는 것들을 집기 쉬운 자리에 놓아 둔다.

한편 현행법상 출생 1개월 이내에 아이의 이름을 지어 읍 · 면 · 동사무소 등 행정기관에 출생신고를 하여야 한다.

궁중 산속

궁중의 산속(産俗)은 서민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 조선 초기에는 왕비와 세자빈만 궁 안에서 해산하였고, 후궁은 궁 밖으로 나가서 몸을 풀었다. 그네들이 궐내에서 해산하게 된 것은 중기 이후부터이다.

조정에서는 해산 서너 달 전 산실청(産室廳)을 설치하고 권초관(捲草官)을 뽑는다. 산실청은 출산에 관한 여러 업무를 담당하는 임시기구이며, 권초관은 해산 때 깔았던 자리를 산실 문에 매다는 관리로서, 중신 가운데 신망이 높고 부귀다남(富貴多男)한 이를 선출한다. 산달이 가까워 오면 친정 부모가 궁에 들어와 산바라지를 한다.

한편, 안산을 위하여 큰 산이나 강에서 치성을 올리며, 나인들도 집으로 돌려보내어 빌게 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무당이나 판수까지 궁내에 들어와 잡귀를 물리치는 비방을 베풀었다.

산기(産氣)가 나타나면 평소 거처하던 방을 산실로 꾸민다. 제조(提調)가 의관(醫官)을 비롯한 몇 명의 관리와 함께 임산부의 방에 이른다. 제집사(諸執事)는 24방위도, 당일도(當日圖), 그리고 차지부(借地符)를 붙이는 한편, 길한 방향으로 자리[百紋席]을 편다. 이 때 순산을 기원하는 최산부(催産符)도 북벽에 걸어둔다. 의관은 ‘모든 잡귀가 물러간 깨끗한 자리에서 안산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내용의 차지부를 세 번 읽는다.

위급할 때 의관을 부르기 위하여 대청 추녀 끝에 방울을 걸고 깔았던 자리를 걸어둘 못 두 개를 문 밖에 박는 것으로 대강의 준비가 끝난다. 이 모든 절차는 홀기(笏記)에 따라 진행되며 왕이 참석해서 확인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문에 달아놓았던 방울을 왕 자신이 흔들어서 순산을 알리며, 권초관은 자리를 받아 돌돌말아서 붉은 끈으로 달아맨다. 한이레 동안 매다는 이 자리는 민간의 금줄과 같은 구실을 한다. 원자나 원손이 탄생하였을 때는 사흘째 되는 날 종묘에 고하고 첫이렛날 백관들은 임금에게 축하의 뜻을 올린다.

태는 백자 항아리에 넣는다. 사흘이나 이레 되는 날 자배기에 옮겨 백 번 씻고 나서 향온주(香溫酒)로 다시 씻어 백 항아리에 담는다. 이것을 더 큰 항아리에 넣어 밀봉하고 생후 5개월째 되는 달에 태봉(胎封)을 선정하여 묻는다. 태봉은 높이 100m 정도의 낮은 봉우리로서 산 아래에 재실을 마련한다.

의의

인간의 출생은 부모나 가족에게 큰 의의가 있을 뿐 아니라, 한 사회의 존속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조건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가계계승을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가계의 계승이 자녀의 출생, 특히 아들의 출생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여겼기에, 혼인조차도 아들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출생이 이처럼 중대한 일이었음에도 예전에는 여러 가지 여건의 부족 때문에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흔히 불상사가 일어나고, 갓태어난 아기가 죽는 일이 잦아서 산모와 아기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갖가지 의례를 베풀었다.

또, 임신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잉태를 위한 주술적인 행위에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인류학에서는 의례를 사회와 분리되는 분리의례, 일상에서 벗어나는 전환의례, 사회로 돌아오는 통합의례의 세 종류로 나눈다.

임산부가 음식을 조절하고 여러 가지 행위를 삼가며, 출산이 가까웠을 때 금줄을 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가족들도 아궁이를 고치지 않거나 상가집에 가지 않는 등의 금기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분리의례이다.

전환의례는 아기 출생 후 사흘 동안 이루어진다. 아기를 목욕시키지 않고 젖을 먹이지도 않으며, 산모 또한 몸을 씻지 않고 음식도 들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산모뿐 아니라 아기까지 먹고 마시고 씻는 따위의 일상에서 벗어나 거의 완전히 무(無)의 상태에서 지내는 것이다. 특히, 산모는 이 기간 동안 심신의 회복을 꾀하는 동시에 아기의 건강을 기원할 뿐이다.

사회로 돌아오는 통합의례는 사흘째 되는 날 이루어진다. 이날 비로소 강보에 쌓인 아기를 목욕시키며 젖도 먹인다. 또, 곳에 따라서는 아기의 태를 처리하고 삼신상을 차려 삼신에게 감사를 드리며, 산모는 첫국밥을 먹음으로써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참다운 통합의례는 첫이레에서부터 세이레 사이에 이루어진다. 금줄을 거두어 바깥 세계와 다시 통하고, 가죽과 이웃이 아기를 처음 대하며, 잔치를 베풀어 친지에게 특별한 음식을 대접하기 때문이다. 또, 이웃과 친지들은 아기의 수명장수를 비는 여러 가지 물품을 선물함으로써 세상과의 교류가 시작된다.

백일과 돌잔치야말로 아기가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참다운 의례인 것이다. 돌에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뿐만 아니라, 이웃에 떡을 돌려서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나고 있음을 알림으로써 완전한 통합을 이루는 셈이다. 특히, 떡을 돌리고 이를 받은 집에서 선물을 하는 행위는, 복락은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누릴 때 참다워진다는 것을 알리는 한국적인 습속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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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육아방식』(유안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6)
『한국여속사』(김용숙, 민음사, 1989)
『서울육백년사』-민속편-(서울특별시사 편찬위원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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