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윤 ()

수암유고<2>
수암유고<2>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정릉참봉, 금오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원길(元吉)
수암(睡庵)
이칭
두정(斗亭)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4년(선조 7)
사망 연도
1660년(현종 즉위년)
본관
서원(西原)
주요 관직
정릉참봉(靖陵參奉)|금오랑(金吾?)
정의
조선 후기에, 정릉참봉, 금오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서원(西原). 자는 원길(元吉), 호는 수암(睡庵) 또는 두정(斗亭). 아버지는 사간 한옹(韓顒)이며, 어머니는 온양정씨(溫陽鄭氏)로 정숙(鄭琡)의 딸이다. 큰아버지인 현감 한현(韓顯)에게 입양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1년(광해군 3)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업을 닦았다. 1617년 〈태학연명소(太學聯名疏)〉를 올려 폐모론을 주창하던 이위경(李偉卿)·정조(鄭造)·윤인(尹訒) 등을 탄핵하고 폐모의 옳지 않음을 주장하다가 광해군에게 미움을 사서 종신 금고의 처분을 받고 도성에서 축출되었다.

그 뒤 향리로 돌아가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에 정릉참봉(靖陵參奉)과 금오랑(金吾郎)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저서로는 『수암유고』가 있다.

참고문헌

『순암문집(順菴文集)』
『수암유고(睡庵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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