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항양(恒陽). 자는 형천(亨天). 태조공신(太祖功臣) 함규(咸規)의 5세손이며, 상의 봉어동정(尙衣奉御同正) 함덕후(咸德侯)의 아들이다.
1135년(인종 13) 서경 반란을 평정할 때 서리(胥吏)로 종군하여 공로가 있었으므로, 발탁되어 선군기사(選軍記事)가 되었다. 청빈하였으며 공무에 충실하였다. 추밀원사(樞密院使) 왕충(王冲)의 천거로 내시(內侍)로 들어와 군주(軍廚: 禁軍의 식사담당)를 담당하여 업무를 잘 수행하였다.
뒤에 보성의 수령이 되어서도 치적이 있었다. 명종 때 병부낭중(兵部郎中)·상서좌승(尙書左丞)을 거쳐 공부상서로 퇴관하였다. 일찍이 의종 때는 교로도감(橋路都監)이 되어, 도성 안의 무당과 음사(淫祠: 귀신을 모신 집)가 많아 민심을 현혹시키므로 음사는 모두 불지르고 무당은 교외로 내쫓아 미신을 배척한 것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