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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릉(顯陵)

고려시대사유적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 있는 고려시대 제1대 태조와 왕비 신혜왕후 유씨의 능.   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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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 있는 고려시대 제1대 태조와 왕비 신혜왕후 유씨의 능.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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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적 변천
태조가 재위 26년인 943년 6월 임신(壬申)에 세상을 떠난 뒤 송악산 기슭에 조성하였다. 태조는 세상을 떠나기 전, 상례와 장례, 원릉(園陵)의 제도는 중국 한문제(漢文帝)·위문제(魏文帝)의 고사에 따라 검소하게 할 것을 유언하였는데, 이것을 그대로 따랐다.
1010년(현종 1) 거란이 두 번째로 고려를 침입하자, 태조의 재궁[梓宮 : 임금의 관]은 부아산(負兒山) 향림사(香林寺)로 옮겨 모셔졌다가, 1016년 정월 다시 현릉에 이장되었다. 1018년 거란의 제3차 침입 때도 재궁을 향림사에 다시 옮겨 안치하였으며가 이듬 해 11월현릉에 다시 장례지냈다. 1059년(문종 13) 5월에는 현릉 묘실에 도적이 들어 시위대장군(侍衛大將軍) 은정(殷貞) 등을 투옥하기도 하였다.
1217년(고종 4) 3월에는 김산(金山)·김시(金始)의 난으로 장군 기윤위(奇允偉)를 보내 재궁을 봉은사(奉恩寺)로 옮겼다.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다시 강화로 옮겨 장례지냈다. 1270년(원종 11)에 강화 이판동(泥板洞)에 건물을 짓고 임시로 재궁을 모셨지만, 1276년(충렬왕 2) 9월현릉에 다시 장례지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송악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능역은 좌우로 청룡·백호의 야산을 끼고 있다. 고려의 왕릉 가운데 조선시대에도 특별히 보호를 받아 보존 상태는 좋다. 봉토(封土)의 기부(基部)를 이룬 면석(面石)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얇게 돋을새김한 호석(護石)이 둘러져 있고, 그 밖에는 돌로 만든 난간이 둘러져 있다. 봉분의 앞에는 석상(石床)·장명등(長明燈)이 놓여 있으며, 좌우에는 망주석(望柱石) 1쌍, 석인(石人) 1쌍이 세워져 있다. 네 모퉁이에는 2쌍의 돌로 만든 사자가 무덤을 지키고 있다. 망주석과 장명등은 현릉에 처음으로 나타나지만, 지금의 것은 조선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면석의 십이지신상 복장도 1276년 다시 장사지낼 때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무덤 앞 중앙에는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閣)이 있는데, 정자각 입구에 홍살문이 있었으나 훼손되었다. 정자각은 1950년 전쟁 중에 파괴되었던 것을 1954년에 옛 모습대로 지었다.
한편,『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여조능석(麗祖陵石)’이라는 구절로 보아 능비(陵碑)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1930년에 간행한『일본지리풍속대계(日本地理風俗大系)』조선편에도 능 오른쪽에 비각(碑閣)이 있다고 전한다. 또한, 비의 정면에 ‘고려태조왕현릉 신례왕비유씨부(高麗太祖王顯陵 神惠王妃柳氏祔)’라 새겨져 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원래 능비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현릉의 내부구조는 돌로 방을 만들고 흙으로 봉분을 쌓은 돌방무덤이다. 돌방은 무덤 안길과 안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칸의 모든 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동쪽 벽 중심부에는 매화나무 한그루가 있고 매화나무줄기 좌우에는 참대가 그려져 있다. 동쪽 벽 아래쪽에는 묵선으로 윤곽을 그린 청룡과 작은 매화나무가 있다. 서쪽 벽 중심부에는 소나무가 있는데, 두 개의 굵은 소나무줄기가 대각으로 그려져 있다. 소나무 아래에는 백호와 여러 대의 매화나무가 있다. 북쪽 벽의 벽화는 심하게 퇴색되어 그림의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구도나 색깔, 윤곽 등으로 볼 때 현무도인 것으로 보인다. 남쪽 벽에는 그림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천정에는 몇 개의 별들이 동서로 늘어져 있으며, 동쪽 껴묻거리 받침대의 고임돌에는 활짝 핀 꽃송이가 묵선으로 그려져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서울특별시사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63)

  • 『조선고분조사보고(朝鮮古蹟調査報告)』(朝鮮總督府,1916)

  • 「왕건왕릉(고려태조현릉)이 발굴되었다」(장상렬,『조선고고연구』1993-2,1993)

  • 日本地理風俗大系  (仲摩照久, 1930)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나각순
개정 (2009년)
전경숙(숙명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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