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86㎝.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효성이 지극하여 5대에 걸쳐 9명의 효자가 나온 홍씨집안을 기리기 위하여 1773년(영조 49)에 세운 비석이다.
비는 4각 대석(臺石)의 비좌(碑座) 위에 비신과 우진각지붕의 돌이 얹혀 있는데, 전면에는 ‘孝橋(효교)’라 써 있고, 뒷면에 그 내용이 적혀 있다. 9명의 효자란 홍연경(洪延慶, 사후 공조참의로 추증)과 그의 아들 연설(延卨), 손자 우적(禹積) · 우평(禹平) · 우구(禹九), 증손자 방만(鈁0x9E6A), 현손(玄孫) 득후(得厚) · 득일(得一), 5세손 상직(相直)을 말한다.
영조대에 연경의 현손인 득후가 상직을 양자로 들였는데, 상직은 대사간(大司諫) 벼슬에 있으면서 종종 입조(入朝)하지 못하였다. 영조가 이상하게 여겨 그 사연을 물은즉. 고향의 조상묘에 성묘하느라고 입조할 수 없었다고 대답하였다.
이 얘기를 들은 영조가 상직의 효성이 지극하다 하여 그의 본향인 마룡동(馬龍洞)의 이름을 효교동(孝橋洞)이라 고쳐 붙여주었고, 이후 후손들이 이곳에 살면서 효교비를 건립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