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6년(숙종 22) 황협(黃悏), 황열(黃悅) 등 8현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상봉서원의 사우였던 용산사(龍山祠)의 액호를 따라 용산서당(龍山書堂)을 다시 지어 향사를 지내오다 1935년에 용산사(龍山祠)의 옛터에 상봉서당을 중건하였다. 이후 1984년 지역 사림과 창원황씨 후손들의 공의를 모아 상봉서당을 다시 상봉서원으로 중건하였다. 1985년에 용산사를 복원하여 황협과 황열 2현을 향사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협은 고려조 회산부원군 황석기(黃石奇, ?∼1364)의 12세손이며 황원록의 아들이다. 자는 낙부(樂夫)이고 호는 독오당(獨梧堂)이다. 임란 때 소실된 덕연서원을 중건하고 성학십도를 권성(權省)의 근본으로 삼아 수양하였다. 조임도(趙任道)와 허목(許穆)을 벗 삼아 도의계(道義契)를 맺고 거처하는 집 앞에 벽오동을 심어 현판을 독오당(獨梧堂)이라 하였다. 후에 덕연서원의 별사에 배향되었다.
황열은 황협의 동생이다. 경사를 백형에게 배우고 무예를 연마하여 효종 때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선전관(宣傳官)으로부터 도총부도사(都總付都事)에 이르고 외직으로 별해첨사(別害僉使)로 나와서 다시는 공명에 뜻을 두지 않고 낙향하여 은거하며 곽재우(郭再祐), 조임도와 교유하였다.
서원은 대문과 본채 및 사당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본채는 목조와가 팔작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중당협실의 구조에 양쪽으로 쪽마루를 놓았다. 매년 음력 3월 5일에 향사를 봉행한다.
중종대에 창원에서 칠원현으로 이거하여 칠원에 대대로 세거해온 창원황씨의 분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조선 후기 문중서원의 대표적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