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서원 ()

유적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조선후기 정몽주 등 3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이칭
이칭
반고서원(般皐書院)
정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조선후기 정몽주 등 3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개설

1712년(숙종 38)에 언양지역 사림들이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한강(寒岡) 정구(鄭逑) 등 3현을 제향하기 위해 언양의 반구대 아래에 창건한 서원이다. 1871년(고종 8)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현재의 서원은 1965년에 자리를 옮겨 중건한 것이다.

역사적 변천

『언양읍지(彦陽邑誌)』에 따르면, 언양의 반구대는 고려 말 정몽주가 유배 온 곳이고, 조선조에 이언적이 경상도관찰사 재임 시 이곳에 머문 적이 있으며, 정구는 이곳에 이거하여 정착할 계획을 세운 곳이라 하여, 1712년에 언양 사림 이위, 김영하, 김지, 정태구, 박문상 등이 중심이 되어 반구대 아래에 반고서원(般皐書院)을 짓고, 이듬해 3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반고(般皐)’라는 명칭은 정구가 간찰에 쓴 “언덕에 집을 지어 은거한다.[考槃在阿]”에서 따온 것이다. 반고서원은 후일 ‘반구서원(盤龜書院)’으로 개칭되었다.

1728년(영조 4)에 화재로 중건한 뒤, 1871년에 훼철되었다. 그 후 서원이 있던 자리에 지역 유림들이 1885년(고종 22)에 포은대영모비, 1890년(고종 27)에 포은대실록비, 1901년(광무 5)에 반구서원유허비를 차례로 세웠으며, 1905년에 비각(碑閣)을 지었다. 1965년에 사연댐이 축조되면서 서원이 수몰되자 유허비 등을 반구대 건너편으로 옮기고, 현재의 모습으로 중창하였다.

내용

외삼문인 지의문(知義門)을 들어서면 ‘반구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린 강당이 있다. 반구서원 편액 옆 좌측에는 ‘삼현재(三賢齋)’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본래 재실에 걸었던 편액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공간이 협소하여 별도의 재실을 짓지 못하고 강당에 함께 걸어둔 것으로 보인다. 강당을 지나 내삼문인 지숙문(知肅門)을 지나면 ‘삼현사(三賢祠)’라는 편액이 걸린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반고서원유허비(槃皐書院遺墟碑)는 2004년 12월 16일에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반구서원 관련 기록으로는 「반구서원강당중수기(盤龜書院講堂重修記)」가 『염수헌집(念睡軒集)』에 수록되어 있으며, 반구서원에서 2003년에 간행한 『반구서원지(盤龜書院誌)』가 경상대학교 도서관,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언양읍지(彦陽邑誌)』
『울산읍지(蔚山邑誌)』
『연려실기술별집(燃藜室記述別集)』
『헌산지(巘山誌)』
『염수헌집(念睡軒集)』
『반구서원지』(반구서원, 2003)
『울산광역시사』(울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2)
집필자
김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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