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8년(인조 26)에 군수 조송년(趙松年)의 주도 하에 김종직(金宗直, 1431∼1492), 최선문(崔善門, ?∼1455), 이약동(李約東, 1416∼1493), 조위(曺偉, 1454∼1503), 김시창(金始昌, 1472∼1558) 등 5현을 제향한 경렴서원(景濂書院)에 기원을 두고 있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된 뒤, 1984년 벽진이씨 문중에서 복원하여 마을 이름을 따서 ‘하로서원(賀老書院)’으로 개칭하였다.
본래 경렴서원을 복원하기 위해 타 문중과 숙의를 하였으나 뜻이 맞지 않아 벽진이씨가 중심이 되어 복원하고 이약동만 제향하였다. 현재 매년 봄, 가을로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춘향은 음력 3월 상정일(上丁日)에 지내며, 추향은 시제를 대신하여 서원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약동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춘보(春甫), 호는 노촌(老村)이다. 1441년(세종 23) 진사시, 1451년(문종 1)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뒤 제주목사, 경상좌도수군절도사, 경주부윤, 전라도관찰사, 개성부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1470년(성종 1) 제주목사 재임시에는 관아 이속들의 부정과 민폐를 단속하여 근절시키고 공물의 수량을 감해 백성의 부담을 더는 등 선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았다. 성종 때 청백리로 뽑히고 기영록(耆英錄)에 올랐다. 저서로 『노촌선생실기(老村先生實紀)』가 있으며, 시호는 평정(平靖)이다.
서원으로 올라가는 양촌동 마을 어귀에는 이약동신도비, 산천단유적비, 벽진이씨서거지허비, 이약동 아버지의 유허비가 서 있다. 서원 경내의 건물로는 외삼문인 영사문(永思門), 사당인 청백사(淸白祠), 제향공간의 외문인 여재문(如在門)과 내문인 숙경문(肅敬門), 강당인 노촌당(老村堂), 동서재에 해당하는 염수당과 필유당, 그 외에 비각 등이 있다. 노촌당은 1977년에 중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