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총독부는 1915년 3월 사립학교 규칙과 동시에 전문학교 규칙도 아울러 공포하게 되었는데, 같은 해 4월 1일부터 시행된 전문학교 규칙에는 “본령에 의하여 설치하는 전문학교가 아니면 전문학교라 칭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보성전문학교의 격하된 교명은 보성법률상업학교였다. 따라서 보성은 1920년 2월에 교장으로 취임한 고원훈(高元勳)이 총독부 당국에 전문학교로의 승격을 거듭 타진하는 한편, 김병로(金炳魯) 등이 재단법인 기성회를 조직하여 널리 사회 독지가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서울을 비롯한 전라도·경상도·경기도·황해도 등의 사회 인사 58명이 각각 1,000원에서부터 3만 원에 이르는 출연(出捐)을 해 주어, 그 총액이 43만 3,000원에 달하였다. 이리하여 1921년 11월 28일자로 총독부에 재단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