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쌍기(雙冀)

고려시대사인물

 고려전기 후주에서 귀화해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한 문신.   귀화인.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쌍기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전기 후주에서 귀화해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한 문신.귀화인.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래 후주인(後周人)으로 산둥지방 칭저우(靑州)의 수령이던 쌍철(雙哲)의 아들이다. 후주에서 벼슬해 산둥반도[山東半島] 등저우[登州]에 있는 무승군(武勝軍)의 절도순관(節度巡官)·장사랑(將仕郎)·시대리평사(試大理評事)를 지냈다.
956년(광종 7) 후주의 봉책사(封冊使) 설문우(薛文遇)를 따라 고려에 왔다가 병이 나 머물게 되었다. 병이 나은 뒤 광종(光宗)의 눈에 들어 후주로부터 허락을 받은 뒤 원보(元甫)·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되었다. 958년 과거제도의 설치를 건의하였다.
959년에는 쌍철이 고려에 와서 좌승(佐丞)이 되었다. 아들 쌍기가 광종의 총애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 고려의 사신 왕긍(王兢)을 따라와 관직을 받은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958년 5월 처음으로 실시된 과거에서 지공거(知貢擧)주 01)가 되었다. 이때 시(詩)·부(賦)·송(頌)·책(策)으로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진사(進士) 갑과(甲科)에 최섬(崔暹)·진긍(晉兢) 등 2인과 명경과(明經科)에 3인, 복과(復科)에 2인을 선발하였다.
960년에 실시된 과거에서 지공거가 되어 최광범(崔光範)·서희(徐熙) 등 7인을 진사 갑과로 뽑고, 명경 1인, 의업(醫業) 3인을 뽑았다. 961년에 실시된 과거에서도 지공거가 되어 왕거(王擧) 등 7인을 진사 갑과로 뽑고 명경업에 1인을 뽑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평가와 의의
최승로(崔承老)는 광종을 평하면서 “쌍기를 등용한 이후로는 문사(文士)를 높이고 중히 여겨 은례(恩禮)가 지나쳤다.”라고 하였다. 또한, 이제현(李齊賢)은 쌍기에 관해 “보탬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겉치레만 화려한 모습의 문(文)을 주창해 후세에 큰 폐단을 남겼다.”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후주에서 닦은 경륜을 살려 광종의 개혁을 도왔던 쌍기의 활약이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고려시대의 과거시험관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박옥걸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