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합각지붕건물. 신라 효성왕 때 지어졌으며 1486년(성종17)에 개축하였다.
원래 안변객사(安邊客舍)의 다락 건물로, 뒤에는 학성산(鶴城山)이 있고, 앞으로는 남대천이 흐르며, 망연한 안변벌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학(鶴)이 벌판에 많이 있다 하여 옛날부터 ‘학호’, ‘학성’, ‘학교’ 등 학과 관련된 이름이 많은데, 가학루란 이름은 학이 많은 벌판에 누각이 있으므로 마치 ‘학이 끄는 가마’와도 같다는 뜻으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누정은 다락건물로는 보기 드물게 포식두공(包式枓栱)이면서 안팎의 포수가 같다. 그 형식과 조각기법으로 보아 조선 초기의 건축양식을 나타내며, 우리나라 건축사연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1925년 일제는 안변객사의 다른 건물은 모두 헐어버리고 가학루만 남겼는데, 6·25 때 파괴되었으나 그 뒤 보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