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2익공 외도리식 두공(枓栱)의 중층 합각지붕건물. 단천아사(端川衙舍)의 정문 다락으로 아사와 함께 1438년(세종 20)에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1757년(영조 33)에 다시 지은 것인데, 그 전에는 청진루(淸津樓)라고 하던 것을 이때부터 공민루라고 바꾸어 부르게 되었으며, 1924년에 지금의 자리에 옮겨 세웠다.
나지막한 밑단 위에 매층에 각각 12개의 바깥기둥을 세웠다. 그 중 1층의 정면에만 돌기둥을 배합하여 세운 것은 비바람으로부터 기둥을 보호하며 누정의 건축미를 돋우기 위한 것이다.
굵은 부재를 쓰면서도 짜임새가 단순하여 경쾌한 느낌을 주며, 두공과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밑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 등의 구성요소들이 간결하게 처리되어 있어, 현존하는 조선시대 관청의 다락건물 가운데 대표적인 건물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