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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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각자의 제작기능을 가진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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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각자의 제작기능을 가진 장인.
내용

목판(木板)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것을 각자(刻字)라고 하며, 각자를 하는 장인을 각자장 또는 각수(刻手)라 한다.

동양에서 각자문화의 선구는 중국으로서 은대(殷代)의 갑골문(甲骨文), 주대(周代)의 각종 금문(金文), 진대(秦代) 이후의 석각(石刻)이 있었고, 당대(唐代) 이후부터는 종이의 사용이 일반화되었으나 종이에 인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판에 글자를 거꾸로 새긴 후 종이에 찍어내야 했기 때문에 각자 기술은 계속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각자문화의 역사는 중국 만주 집안현(輯安縣)에 있는 광개토왕릉비, 중원고구려비, 고구려 평양성벽석각, 진흥왕순수비, 울진봉평신라비(蔚珍鳳坪新羅碑), 백제 무령왕릉매지건 등의 석각류를 비롯하여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 광배문(光背文), 익산왕궁리오층석탑 출토 금판경첩(金板經帖)(고려 초기) 등의 금문(金文)과 약간의 삼국시대 인장류(印章類) 등으로 살펴볼 수 있다.

각자는 위와 같은 종류 이외에도 거울에 새긴 문자, 화폐에 새긴 문자, 도자기에 새기거나 찍은 문자, 석경(石經), 봉니문자(封泥文字), 벽돌 기와에 남긴 문자 등 그 종류는 무수히 많다. 이러한 각자들은 탁본(拓本)이나 인쇄를 하기 위해 새긴 것은 아니지만 후대의 조판인쇄(雕版印刷)의 각자 방법과 기술상 연결되는 것은 확실하다.

조판인쇄는 수대(隋代)에 시작하여 당대(唐代)를 거쳐 오대(五代)에는 널리 퍼졌고, 그 인쇄물은 송대(宋代)에 이르러 매우 정밀하였다. 우리 나라에 전해지기는 신라시대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이유는 751년(신라 경덕왕 10) 경에 간행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가장 오래된 목판본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의 초기 인쇄각자(印刷刻字)는 불서(佛書)에서 비롯되어 차츰 관과 민가로 확산되었다고 보여진다. 우리 나라는 9세기 후반기인 신라 말기에 목판인쇄물이 널리 보급되어 마침내 시문(詩文) 등 일반 학술서까지 간행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신라시대의 목판인쇄술을 계승하여 사찰을 중심으로 경전이나 고승의 시, 문집 및 저술 간행이 성행하면서 목판인쇄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새김이 정교하고, 각법 또한 탁월하여 고려시대 불경 경판들이 가장 뛰어난 조판(雕版)의 정화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배불정책에 의하여 사찰경제가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고려시대의 목판인쇄가 그대로 전래되어 판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내려오면서 점차 각자의 새김은 초기에 비해 그 정교함이 매우 떨어져 퇴화현상을 나타내었다. 뿐만 아니라 금속활자의 발달은 목판각자의 퇴화를 촉진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각자장에 김각한(金閣漢)이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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