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때, 여도만호, 내금위, 정략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06년 전계신(全繼信) 등과 함께 대마도에 파견되어 1년간 머물면서 도주(島主) 소 요시토시[宗義智]와 교섭하여 그들의 국서를 고치게 하고, 두 명의 왕릉범(王陵犯)과 다치바나 도모마사[橘智正]을 잡아오는 한편, 잡혀간 포로 150여 명을 데리고 오는 등 전후 수습에 힘썼다.
죽은 뒤 충훈부로부터 삼렬(三烈)이라는 사호(祠號)를 받고, 삼렬사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삼렬당문집(三烈堂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삼렬당문집(三烈堂文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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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무과급제 : 『삼렬당문집(三烈堂文集)』, 행장.(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經古819.5-G1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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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대왜 교섭 : 『선조실록』 203권, 1606년 9월 13일. "차관 부사과 전계 신이 대마도에서 왜인과 문답한 내용을 치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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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감경인 저술 : 『삼렬당문집(三烈堂文集)』(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經古819.5-G1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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