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경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시대 때, 여도만호, 내금위, 정략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여일(汝一)
관술정(觀術亭)
이칭
삼렬(三烈)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9년(선조 2)
사망 연도
1648년(인조 26)
본관
회산(檜山)
출생지
경상남도 창원시
주요 작품
삼렬당문집(三烈堂文集)
주요 관직
여도만호|내금위|정략장군
관련 사건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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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때, 여도만호, 내금위, 정략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회산(檜山). 자는 여일(汝一), 호는 관술정(觀術亭). 아버지는 감예종(甘禮從)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로 박종(朴宗)의 딸이다. 창원에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감경륜(甘景倫)과 함께 이순신의 진영에 달려가 공을 세워 여도만호(呂島萬戶)가 되었다. 이어 내금위(內禁衛) · 정략장군(定略將軍)이 되고, 원종공신의 적에 올랐다.

1606년 전계신(全繼信) 등과 함께 대마도에 파견되어 1년간 머물면서 도주(島主) 소 요시토시[宗義智]와 교섭하여 그들의 국서를 고치게 하고, 두 명의 왕릉범(王陵犯)과 다치바나 도모마사[橘智正]을 잡아오는 한편, 잡혀간 포로 150여 명을 데리고 오는 등 전후 수습에 힘썼다.

죽은 뒤 충훈부로부터 삼렬(三烈)이라는 사호(祠號)를 받고, 삼렬사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삼렬당문집(三烈堂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삼렬당문집(三烈堂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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