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경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때, 여도만호, 내금위, 정략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관술정(觀術亭)
  • 이칭삼렬(三烈)
  • 여일(汝一)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회산(檜山)
  • 사망 연도1648년(인조 2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여도만호|내금위|정략장군
  • 주요 작품삼렬당문집(三烈堂文集)
  • 출생 연도1569년(선조 2)
  • 출생지경상남도 창원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서지원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한학)
  • 최종수정 2026년 01월 1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시대 때, 여도만호, 내금위, 정략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회산(檜山). 자는 여일(汝一), 호는 관술정(觀術亭). 아버지는 감예종(甘禮從)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로 박종(朴宗)의 딸이다. 창원에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생 감경륜(甘景倫)과 함께 이순신의 진영에 달려가 공을 세워 여도만호(呂島萬戶)가 되었다. 이어 내금위(內禁衛) · 정략장군(定略將軍)이 되고, 원종공신의 적에 올랐다.

1606년 전계신(全繼信) 등과 함께 대마도에 파견되어 1년간 머물면서 도주(島主) 소 요시토시[宗義智]와 교섭하여 그들의 국서를 고치게 하고, 두 명의 왕릉범(王陵犯)과 다치바나 도모마사[橘智正]을 잡아오는 한편, 잡혀간 포로 150여 명을 데리고 오는 등 전후 수습에 힘썼다.

죽은 뒤 충훈부로부터 삼렬(三烈)이라는 사호(祠號)를 받고, 삼렬사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삼렬당문집(三烈堂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삼렬당문집(三烈堂文集)』

주석

  • 주1

    : 무과급제 : 『삼렬당문집(三烈堂文集)』, 행장.(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經古819.5-G14s])

  • 주2

    : 대왜 교섭 : 『선조실록』 203권, 1606년 9월 13일. "차관 부사과 전계 신이 대마도에서 왜인과 문답한 내용을 치계하다"

  • 주3

    : 감경인 저술 : 『삼렬당문집(三烈堂文集)』(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經古819.5-G1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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