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회령 출신. 1920년구춘선(具春先)이 이끄는 국민회(國民會)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5월경 만주화룡현(和龍縣)에서 국민부 제일남부 지방 경호부장 장성순(張成順) 휘하의 송언지회(松堰支會) 경호원이 되었다. 활동은 독립군과 독립운동자금 모집, 밀정색출 작업이 주류를 이루었다.
1920년 7월 장성순의 지휘 아래 간도 일대에서 국민회를 중심으로 활동할 독립군 모집에 나섰고, 40여 명을 모집하여 본부로 보내는 데 공을 세웠다.
이어서 9월 초에는 장성순·함경준(咸京俊)·장여극(張汝極) 등과 함께 일본경찰의 앞잡이 였던 이덕선(李德善)·윤달수(尹達壽)·김덕기(金德基) 등 밀정 3명을 색출하여 총살하는 데도 참가하였다.
또 같은 9월 초에 함경북도 회령군 화풍면(花豊面)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앞장서서 수백원을 모금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9월 말에는 고진홍(高鎭洪)·신언규(申彦奎)와 함께 화룡현사대사(四對社)·증봉동(甑峰洞)·무릉기동(武陵基洞) 부근에서 헌병보조원 출신인 남성률(南聖律)을 체포하여 징치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체포된 강기운은 강도·살인 등의 죄목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1년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