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빈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독립단에 입단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43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94년(고종 31)
  • 출생지평안북도 초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희곤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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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 독립단에 입단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북도 초산 출신. 1919년 3월 중국 봉천성 집안현 충화보(沖和堡)로 망명, 1920년 소양도(小洋島)에서 최석순(崔錫淳) 등이 조직한 독립단에 입단하여 활동하였다.

1921년 최석순의 명령에 의하여 김옥관(金玉觀) 외 5명과 함께 독립단 방해자인 봉치극(奉致極)을 사살하였다. 또, 1921년 봉천성 관전현(寬甸縣) 하루하년구(河漏河碾溝)에서 청년단의 검찰 직책을 가지고, 송신(宋申)의 지휘 아래 백인식(白仁植)·고영태(高永泰)·박곽출(朴郭出)·김형수(金亨洙) 등과 활동하였다.

그리고 1922년 5월 최석순으로부터 독립단의 방해자인 김하룡(金河龍)에 대한 처단 지시가 있자, 안봉선(安奉善)·백인식·박정학(朴正學) 등과 협의한 뒤, 환인현(桓仁縣) 이차구(裡岔溝) 산중에서 그를 주살하였고, 이어서 냉수천자(冷水泉子)에서 박병선(朴炳善)으로부터 10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3년 7월경 참의부(參義府) 참의장 겸 제2중대장인 최석순의 휘하에 속해 있었는데, 이 부대는 집안현에 있는 고마령(古馬嶺)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29명이 전사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분산되었다.

여기에서 탈출하여 초산읍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지만, 1929년 9월 초산경찰서 밀정의 밀고로 붙잡히고 말았다. 1930년 2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제령(制令) 7호 위반 및 살인강도죄로 형을 선고받고, 4월 2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유공자공훈록』 9(국가보훈처, 1991)

  • - 「판결문」(1930. 4. 24, 평양복심법원)

  • - 『朝鮮獨立運動』 3(金正明 編, 東京 原書房,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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