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강릉 회암영당에 보관되어 있는 주희(朱熹)의 초상화.
개설
내용
이 초상화가 회암영당에 봉안되기까지는 장기간에 걸친 우여곡절이 있었다. 우선 1778년(정조 2) 지역 문인 심상현(沈尙顯)이 나서서 충주 운곡서원의 주자 초상화를 이정(二程)과 심언광(沈彦光, 1487~1540)을 배향하고 있던 하남재(河南齋)로 이안(移安)하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사묘(私廟)인 하남재를 서원화(書院化)하려던 삼척 심씨 가문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1782년(정조 6) 하남재가 훼철되었고 초상화는 강릉 오봉서원(五峰書院)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으로 오봉서원마저 훼철됨에 따라 연천 임장서원에 임시 보관중이던 초상화를 1887년(고종 24) 주씨 문중에서 별도의 자리에 회암영당을 짓고 가져다 봉안하였다고 한다. 전후 상황을 종합하면, 1778년 심상현이 운곡서원본을 모사해 왔고, 하남재로부터 오봉서원과 임장서원을 거쳐 1887년 회암영당에 안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존 회암영당본의 형식화된 필치와 채색법은 18세기 후반의 초상화풍과 거리가 있어 19세기 이후에 한 차례 더 모사하여 봉안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특징
「강릉 회암영당 주희영정」은 전신의좌상으로 그려졌는데, 안면의 모습은 명대 문인 섭공회(葉公回)가 편찬한 『주자연보(朱子年譜)』에 게재된 「태사휘국문공진상(太師徽國文公眞像)」과 흡사하다. 얼굴형을 비롯해 이마와 눈, 뺨 등의 굵은 주름살은 ‘주자 61세상’의 특징을 보여 준다. 특히 오른쪽 관자놀이 부분에 표현된 북두성 모양의 반점은 흑건(黑巾)과 심의를 착용한 점과 함께 주인공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특징이다. 두 손을 모으고 앉은 공수 자세로 교의에 앉아 있는 모습은 문인 관료들의 관복본(官服本) 초상화를 연상시킨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지역사 자원의 교육 자료 활용 방안 탐색』(임호민, 서경문화사, 2009)
- 『강릉의 역사와 문화 유적』(강릉대학교 박물관, 1995)
- 「조선시대 주자 숭모열과 그 이미지의 시각화 양상」(박정애, 『대동문화연구』 9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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