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왕건의 4대조이다. 『고려사』에 실린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기록된 고려세계(高麗世系)에 의하면, 성골장군(聖骨將軍) 호경(虎景)이 백두산으로부터 내려와 부소산(扶蘇山) 좌곡(左谷)에 이르러 장가를 들어 살았다.
그러나 집은 부자였지만 자식이 없었다. 하루는 마을사람 아홉 명과 함께 평나산(平那山)에서 매사냥을 하다가 호랑이로 변신한 산신을 만나 부부가 되었다. 그러나 옛부인을 잊지 못해 밤마다 항상 꿈처럼 와서 교합하여 낳았다 한다.
체모가 단정, 근엄하고 재주가 많았다. 예성강 서쪽 영안촌(永安村)의 부자집 딸 구치의(具置義)에게 장가를 들어 오관산(五冠山)마가갑(摩訶岬)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 패강진(浿江鎭)의 두상대감(頭上大監)인 김팔원(金八元)이 풍수지리를 잘하여 부소군에 왔다가 말하기를, “만약에 군(郡)을 산의 남쪽으로 옮기고 소나무를 심어 암석이 드러나지 않게 하면, 삼한(三韓)을 통합하는 자가 태어나리라.”고 하였다.
이에 군인(郡人)들과 함께 산의 남쪽으로 옮겨 살며 소나무를 온 산에다 심고 송악군(松嶽郡)이라 이름을 고치고 군의 상사찬(上沙粲)이 되었으며, 마가갑의 집을 영업지(永業地)로 삼아 왕래하였다. 집에 천금(千金)을 축적하고 두 아들을 낳아는데, 끝의 아들이 국조원덕대왕(國祖元德大王)으로 추존된 보육(寶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