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는 청해진(淸海鎭)을 세력근거지로 하여 문성왕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 데 상당한 공헌을 하였다.
자기 딸을 왕비로 삼겠다는 언약이 귀족들의 반대로 지켜지지 않자, 장보고는 모반하였다가 842년(문성왕 4)에 조정에서 보낸 무주인(武州人) 염장(閻長)에게 암살당하였다.
장보고가 살해된 뒤 장보고의 부장 이창진(李昌珍) 등이 난을 일으키다가 역시 염장에게 평정되었는데, 염장의 요구에 따라 장보고의 회역사(廻易使) 이충(李忠)·양원(楊圓) 등의 인도를 요구하기 위하여 일본에 사신으로 보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