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말기에 신라에서 첩자로 활약하였다. 642년(선덕여왕 11) 김춘추(金春秋)가 백제 정벌을 위하여 고구려에 청병(請兵)하러 갔다가 오히려 고구려 정세를 염탐하러 온 사람으로 의심을 받아 고구려에 억류되어 60여일이 되도록 돌아오지 못하였다.
김춘추가 고구려로 떠나기에 앞서, 만일 60여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고구려와 백제를 침략할 것이라고 피를 마시며 김춘추와 맹세를 하였던 김유신(金庾信)은 장사(壯士) 3,000명을 뽑아 김춘추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고구려로 떠날 기일을 정하였다.
이때 고구려의 첩자로서 신라에 와 있던 덕창이 이 사실을 사람을 시켜 고구려의 보장왕에게 알리게 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고구려는 김춘추를 더 이상 가두어두지 못하고 후한 예로써 대접하여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