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남원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개령암터에 있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12구의 마애불이다. 남원 지리산 정령치 개령암지 뒤 절벽에 새겨져 있다. 총 12구 중에 3구는 비교적 잘 보이고 9구는 마모가 심한 편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존상은 마애여래입상으로 높이가 4m가량이다. 세 군데에 명문이 남아 있는데 제작 연도를 ‘927년’으로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고려시대의 불상 양식은 전 시대의 전통을 계승한 것과 지방에서 특색있게 발전한 것 두 계통으로 나눈다. 이 불상군은 전라도 지역에서 발전한 독특한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개령암터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12구의 마애불. 불상군.
개설
내용
마애불상군은 크게 네 개의 군으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가운데 두 개의 군에 새겨진 향좌측 불좌상과 향우측 불입상이 규모 면에서 볼 때 전체 도상의 중심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 불상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대략 1m에서 40㎝가량의 마애조상이 조성되어 있다. 그 형태를 보면 대형 불입상은 마치 두 손을 모아 소매 안에 넣는 중국식 인사법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데, 얼굴은 마치 장승처럼 추상적이고 왜곡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애불이 새겨진 절벽 세 군데에 명문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 첫 번째는 마애불상군 중앙부 상단에 위치한 높이 약 3m의 편단우견 마애불좌상 왼편 부근에 있는 명문이다. 글자는 “비로자나방불, 세전소□, □천보십□, 사사전□□(毘盧遮邦佛 世田小□ □天寶十□ 師士田□□)”으로 판독된다. 두 번째는 여기서 향우측에 자리한 높이 약 4m의 통견 착의 마애여래입상 왼편에 있으며 “세□전명월지불(世□田明月智佛)”로 판독된다. 세 번째 명문은 대형 마애불좌상 서남쪽에 있으며, “천불□멸죄다라, 여타악□보노□가악□진, 비□□아명가왈□화제차, 시□□□백아연, 타가, □제□사(千佛□滅罪陀羅 女他惡□普魯□伽惡□普 卑□□阿明伽曰□和帝此 是□□□白阿衍 他伽 □提□詞”로 판독되고 있다. 이들 명문은 중간에 탈락한 부분이 있어 전체적인 해석은 어렵지만, 불상군 제작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특히 ‘천보십’은 중국의 오월(吳越) 혹은 남한(南漢)에서 사용했던 연호로 추정되는데, 만약 오월국의 연호라면 천보 10년은 927년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남원 지역은 후백제 견훤의 통치를 받았으므로 이들 마애불은 후백제 시대로 편년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명월지불’이라는 존명 역시 마애불의 도상적 의미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요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지리산 정령치 마애불상군 조성배경」(황호균, 『불교문화연구』 4, 199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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