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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영양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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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영양물질.
내용

거름은 두엄을 비롯하여 똥·오줌·재·똥재·풀 섞인 것과 깻묵·벽흙[壁土]·썩은 흙·구들미·마름[水藻]·쌀겨·삶은 곡식 등을 썼다. 이 밖에 곳에 따라서는 정어리 등의 생선, 동물뼈와 잎이 많은 부드러운 나뭇가지, 바다풀까지도 이용하였다.

거름은 씨를 뿌리기 전이나 모를 내기 전에 주는 것을 밑거름, 씨앗을 뿌린 뒤나 옮겨 심은 뒤에 주는 것을 웃거름이라고 하며, 공장에서 화학적 방법으로 생산하는 제품은 ‘비료(肥料)’라고 따로 부른다.

‘한 사발의 밥은 남에게 주어도 한 삼태기의 재는 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우리네 농가에서는 일찍부터 거름 장만에 많은 힘을 기울여 왔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두엄이다.

두엄감으로는 외양간·마구간·돼지우리 바닥에 깔았던 짚이나 가축의 똥·오줌을 으뜸으로 치지만, 풀이나 재 그리고 부드러운 버드나무나 잣나무의 가지를 섞기도 하고, 동물의 털이나 내장·쓰레기 등 썩는 것이면 모두 이용한다.

농가에는 외양간 가까이에 반드시 두엄터가 있지만 뒤꼍이나 마당 앞의 그늘에 두기도 한다. 여름철에는 소나 말을 그러한 곳에 매어 두기 때문이다.

두엄더미에는 오줌이나 외양간의 지지랑물(비가 온 뒤 지붕이 썩은 초가 처마에서 떨어지는 검붉은 낙수) 또는 개숫물을 부어서 습도를 유지해 주며 이따금 뒤집어서 고루 썩도록 한다. 두엄터에 지붕을 씌운 두엄간은 지붕이 매우 성글어 비가 내리면 두엄더미에서 썩은 물이 흘러내린다. 따라서 농가에서는 이의 손실을 막으려고 두엄더미 아래쪽에 구덩이를 파서 외양간의 오줌과 지지랑물을 그곳에 모으며, 거기에 쌀겨나 볏짚의 재를 버무려서 거름으로 쓰기도 한다.

외양간의 것을 소두엄, 마구간의 것을 말두엄, 돼지우리의 것을 돼지두엄이라고 하며, 두엄감이 주로 풀일 때는 풀두엄이라고 한다. 풀두엄은 초가을의 농한기에 들에 자라는 잡풀을 베어서 썩였다가 이듬해 봄에 쓴다.

풀 베는 일은 농번기에도 쉬지 않고 했으며, 곳에 따라서는 일정한 날을 잡아서 경쟁적으로 베게 하고 그 결과를 따져서 가장 많이 벤 집에 상을 베풀었으며, 이를 마을 단위로 벌이기도 하였다.

강원도 강릉에서는 음력 7월에, 전라남도 고흥에서는 음력 6월에 이와 같은 일을 벌였다. 한편, 정학유(丁學游)의 <농가월령가> 7월령에는 “거름풀 많이 베어 더미 지어 모아 놓고…….”라고 하였다.

이 노래에서는 2월령에서 검불 따위를 태워서 재거름을 받으며, 3월령에서는 외밭에 많이 주도록 당부하고, 4월령에서는 갈풀로 거름을 장만할 때 풀을 베어 섞도록 권고하였다.

사람의 똥이나 오줌도 중요한 거름의 한 가지로 여겨서 사람의 배설물을 ‘거름’이라고 불러왔다. 똥은 어느 정도 썩인 다음에 주는 것이 좋다. 흔히 밭가에 웅덩이를 파고 모아 두는데 여름에는 4, 5일, 봄·가을에는 열흘쯤 지나 암흑색으로 변한 뒤에 쓴다. 예전에는 큰 독을 땅에 묻고 모았으나 근래에는 ‘횟독’(고흥지방)이라 하여 시멘트로 넓고 깊게 확을 만들고 한 달에 한 번쯤 쳐내어 거름으로 쓴다.

1950년대까지 서울 근교의 농민들은 시내에 들어와 돈을 내고 똥·오줌을 퍼갔다. 오줌도 똥에 못지 않은 거름이었다. 농가에서는 사랑방 가까이나 뒷간 근처에 오줌독을 묻고 따로 받았으며, 농사에 열심인 사람은 남의 집에 있다가도 오줌을 누려고 자기집으로 달려가기도 하였다.

우하영(禹夏永)은 ≪천일록 千一錄≫에서 “초겨울부터 정월 보름 사이에 모은 것은 가을 보리밭에 주고 정월부터는 오줌에 재를 섞어 뒤집으면서 햇볕을 쬔 뒤에 덧거름으로 쓴다. 한 해 동안 집안 사람들의 오줌을 모두 모으면 백묘(百畝)의 논밭을 걸울 수 있다.”고 하였다.

볏짚을 태운 재는 알칼리성분이 강해서 습기가 많은 밭이나 산성토질을 개량하는 데 적당하다. 농가에서는 뒷간을 크게 짓고 한쪽에 재를 모으는데, 그것을 잿간이라고 부른다. 재는 바람에 흩날리기 때문에 흔히 오줌이나 똥에 버무려서 쓴다.

똥재는 재에 똥을 버무린 것이다. 농가에서는 뒤를 본 다음 재를 덮고 둥글게 말아서 한쪽에 모아 둔다. 이것은 냄새가 적고 저장이나 운반이 간편하며 재가 지닌 강한 알칼리성 때문에 병균이 번식하거나 해충이 모여드는 것을 막아 주지만 오줌의 질소성분을 잃기 쉽고 인산염의 용해를 방해하는 결점도 있다.

똥재는 상품으로 거래되었으며, 수원에서는 1900년대 초에 상등품 한 섬에 30전, 중등품은 20전, 하등품은 10전에 거래되었다.

똥재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 최초의 농서인 ≪농사직설 農事直說≫에도 “올해 못자리에 똥재를 주되, 다년간 못자리로 써온 논에는 다섯 마지기에 석 섬을, 처음 만든 데에는 넉 섬을 주는 것이 적당하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똥재는 논보다 밭에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질소성분이 많은 깻묵가루도 좋은 거름이다. 깻묵에 재를 섞어 못자리나 담배 거름으로 쓰면 효과가 크다. 흙도 거름으로 이용한다. 고가의 벽을 털어 낸 흙이나 온돌을 고칠 때 긁어 낸 구들미, 그리고 도랑 및 개울이나 저수지 바닥 흙은 기름져서 거름으로 쓰기에 매우 좋다. 이를 모으려고 해마다 모를 낼 무렵에 구들을 뜯기도 하며 이듬해에 쓰려고 일부러 잔디를 떠다가 구들 받침으로 삼기도 한다.

물 속에 가라 앉았던 앙금은 밭둑에서 한 번 말렸다가 거름으로 쓴다. 물풀은 많은 유기물을 지니고 있어서 땅을 개량하는 데 효과가 크다. 들풀보다 부드러워 분해가 빠르나 채취가 어렵고 수분이 많은 결점이 있다.

강원도 영서지방에서는 6, 7월에 큰 물이 지거나 겨울철 파도가 높을 때 밀려나오는 마름(그곳에서는 말초라고 함)을 거두어 똥과 섞어 재어 두었다가 모심기 전에 뿌린다.

또, 거름이 모자라는 집에서는 바닷물에 똥·오줌을 반쯤 섞어서 보름쯤 썩였다가 보리밭에 주며, 똥이 부족한 경우에는 바닷물만 썩여서 준다.

≪천일록≫에 “가을보리 한 말과 소금 한 되에 재를 섞어서 심으면 비록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된다. 종자 한 말에 소금 두 되를 섞으면 더욱 좋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예로부터 짠 기운을 거름 대신 써왔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떼배 두 척이 해류의 반대 방향으로 저어 가면서 듬북(해초의 한가지)을 길이 1m쯤 잘라서 4, 5일 동안 말렸다가 하얗게 소금이 피면 거름으로 쓴다. 이것은 10경 보리씨를 뿌린 뒤에 깔아 주면 더욱 좋다.

멸치가 흔한 고장에서는 말린 멸치를 빻아서 못자리나 아이김 맬 때 거름으로 썼으며, 정어리 기름을 짤 때 나오는 늠치물(강릉지방에서는 정어리를 늠치라고 함)을 감자 밑거름으로 주었다. 40평(감자 종자 한 말을 심는 넓이) 밭에 8말쯤 주는 것이 적당하다.

한편, 그 지방 농가에서는 지붕 이을 짚이나 땔나무를 해안의 어가에 대는 조건으로, 한 집의 오줌·똥을 독점하였다. 그러한 일은 해마다 동짓달에 결정짓는다.

예전에는 개똥도 좋은 거름이었다. 개똥을 물에 타거나 똥·오줌에 섞거나 그대로 쓰기도 하는데, 주로 채소밭에 주며 참외밭에 쓰면 열매가 달다고 한다. 농가에는 개똥을 모으기 위한 개똥 삼태가 따로 있었으며, 주로 노인들이 이른 아침에 걷으러 다녔다.

≪농사직설≫에는 이 밖에 “빈 꼬투리가 달린 참깨의 대를 썰어서 외양간에 깔았다가 쳐내어 겨울을 지낸 것이나, 외양간 오줌에 잰 목화씨도 좋은 거름이 된다.”고 하였다. 현재도 전라남도지방에서는 목화씨를 재에 버무려서 논을 세 번 맨 뒤에 웃거름으로 쓴다.

조선시대 세종 때는 거름 장만을 정책적으로 독려하고, 그 시행 여부를 감독할 관리를 각 지방에 파견한 일까지도 있었다. 정부뿐만 아니라 일반 식자층에서도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바, 조선시대에 나온 농서마다 그에 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농가에서는 그것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듯하며, 그와 같은 경향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계속되었다. 농가에서 장만해 온 거름의 종류나 방법은 15세기 초의 ≪농사직설≫이나 18세기 후반의 ≪천일록≫ 내용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며, 그러한 상황은 1960년대에 들어와 화학비료가 대량생산되기까지 답습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1961년 이래 1977년까지 7개의 대형 비료공장을 건설, 요소를 비롯한 각종 복합비료를 생산하기에 이르렀으며, 현재는 생산 과잉으로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자급 비료를 제외한 화학적 제조법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화된 비료는 대체로 질소질 비료·인산질 비료·칼리질 비료·복합비료 등이 있다.

(1) 질소질 비료

황산암모늄은 백색 결정으로 질소함량 21%의 생리적 산성이며 알칼리성 비료와 혼합하면 기체로 질소성분이 손실되고 암모니아가 작물에 흡수된 다음 토양을 산성화한다. 시비방법은 인산질 비료인 중과린산석회(중과석) 또는 과린산석회(과석), 그리고 칼리질 비료인 염화칼륨 또는 황산칼륨을 적당히 병용한다. 연용하면 토양이 산성화되므로 석회로 중화해야 한다.

노폐화된 논에서는 황화수소가 발생하여 벼뿌리에 유해하므로 사용을 금하며 작토(作土) 전층에 혼입되도록 비료를 주어 탈질(脫窒:질산 이온이 생물의 작용에 의해 환원되어 질소로 변하는 일)을 방지하도록 하고, 습답에서는 물을 적게 대고 써레질 바로 전에 주어 비료가 흙과 잘 섞이도록 하며, 모래땅에서는 파종 또는 이앙하기 전에 거름을 적게 하고 파종 또는 이식한 뒤에 다시 거름을 여러 번 나누어 주는 것이 좋다.

요소는 질소 함량이 46%이고 백색의 입상이다. 중성 비료이며 속효성이고 흡습성이며 물에 잘 녹고 엽면살포용으로도 쓰이며 토양 중에서 분해되어 흙에 잘 흡착된다.

시비방법은 비료성분이 황산 암모늄(황안)의 2.2배로 농후하기 때문에 시비에 주의를 요하며 인산질 및 칼리질 비료와 병용해야 하고 건답에서는 전층 시비 후 4, 5일경에 물을 대야 한다.

수리가 불완전한 곳에서는 물을 댄 후 요소를 주고 갈아엎은 다음 1, 2일 후에 써레질을 하고 모를 심는다. 습답에서는 되도록 물을 낮추고 요소를 준 다음 써레질을 하는 것이 좋다.

밭에서는 시비 후에 흙을 덮고 파종을 해야 한다. 요소의 엽면살포시에는 1∼2%용액을 살포하며, 과수 등에는 농약과 혼용하여 0.5% 내외의 용액을 살포한다.

염화암모늄은 백색의 작은 알갱이로 질소 함량은 25%, 부성분은 염소가 66%이다. 화학적으로 중성이며 속효성이고 알칼리성 비료와 혼합하면 질소성분의 손실을 가져온다.

시비방법은 인산질 및 칼리질 비료와 병용하고 토양을 산성화하므로 염기성 비료와 같이 쓰는 것이 좋다. 어린 뿌리나 묘에 닿게 되면 유해하므로 직접 식물에 닿지 않도록 하며, 노후화답에도 쓸 수 있고, 모래땅에는 기비로 조금 주고 추비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 담배와 감자에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2) 인산질 비료

과린산석회는 회백색 또는 담갈색의 분말이며, 강한 산성이고 특유한 냄새가 있으며 가용성 인산이 20%이다. 시비방법은 인산이 토양에 고정되지 않도록 퇴비와 혼합하여 시용한다.

기비로 주어야 하며, 질소와 칼리질 비료를 함께 병용하고 벼에 시용할 때에는 표층 시비하고 노후화답에는 적합하지 않다. 중과린산석회는 유효인산이 40∼48%이나 실제로는 46%로서 황산근이 없고 인산 함량이 높다.

인산은 거의 전부가 수용성이며 회백색의 굵은 입상이다. 시비방법은 과석과 비슷하나 퇴구비·황산칼륨·염화칼륨·인분뇨·염화암모늄 등과 혼합해도 좋으나 나뭇재·석회·석회질소·요소 등과 혼합해서는 안 된다.

용성인비(熔性燐肥)는 인산·석회·고토(苦土)·규산이 산화한 것으로 약산가용물로서 인산은 99%가 녹는다. 물에 녹아서 알칼리성(PH 8.5∼9.5)이 되고 변질되지 않으며 황산근이 없다. 시비방법은 밑거름으로 시용할 것이며, 논에는 써레질할 때 20㎏ 내외를 뿌리고 모를 심는다.

한랭한 지방에서는 과린산석회와 혼용하면 효과가 크고 추락답에는 15㎏ 내외를 시용하면 효과가 크며, 마그네슘·칼슘·규소·망간 등이 결핍된 토양에 효과가 크다.

용과린(熔過燐)은 지효성인 용성인비와 속효성인 과린산석회를 혼합하여 만든 것으로 가용성 인산 20%, 가용성 인산 중 수용성 인산 8%와 고토 3∼6%, 석회 29∼30%, 규산 5∼9%, 미량 요소가 약간 함유되어 있으며 중성비에 준한다. 인산질 비료에는 인산용액·인산암모늄 및 소성인비 등이 있다.

(3) 칼리질 비료

염화칼륨은 백색의 결정으로 칼륨 함량은 유럽산은 40∼50%, 미국산은 60%이며, 생리적 산성비료이다. 시비방법은 토양에 잘 흡수되므로 기비·추비로 시용할 수 있으며 질소·인산질 비료와 병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전분·당료작물(糖料作物)과 담배에는 사용하지 말 것이며, 삼·아마 등의 섬유작물에는 매우 좋은 비료이다. 토양을 산성화하기 쉬워서 연용하지 말아야 한다.

황산칼륨은 결정성 백색 분말로서 담황색 또는 회색이며 48∼50%의 칼륨을 함유하고 있다. 시비방법은 토양에 잘 흡수되고 기비·추비로 사용되며 생리적 산성 비료이므로 염기성 비료와 섞어서 사용하고 토양산성화에 주의하여야 한다. 특히, 전분·당료작물에 유효하고 노후화답에는 적당하지 않다.

(4) 복합비료

비료의 3대 영양소인 질소·인산·칼리 중 2종 이상의 성분이 함유된 비료를 말한다. 현재 국내 비료회사에서 생산되는 종류는 질소-인산-칼리의 성분 함량이 18%-18%-18%의 수도묘판용(水稻苗板用), 22-22-11의 수도본답용, 14-37-12의 맥기비용(麥基肥用), 17-21-17의 통일벼기비용, 21-17-17의 일반 수도기비용과 18-46-0의 수출용 인이안(燐二安)이 있다.

시비방법은 기비로 주어야 하고 밭작물에는 종자에 닿지 않게 주고 작물에 따라 부족 성분은 단비(單肥)로 보충해야 한다.

제2종 복합비료에는 8-14-12의 대두용, 12-16-4의 산림용고형복합비료(山林用固形複合肥料), 10-15-20의 연초용, 17-7-9의 상전용(桑田用), 11-10-10의 원예용 복합비료 등이 있으며, 시용법은 제1종 복합비료에 준한다.

제3종 복합비료는 제2종 복합비료의 원료 비료(황안·요소·인안·과석·중과석·용성인비·용과인·염화칼리·황산칼리 등)에 유기물을 배합한 비료이고, 질소·인산·칼리 중 2종 이상 합계량이 12% 이상, 석회질소가 원료인 때는 지시안지아미드태 질소는 1.0% 이하, 유기질 비료는 원료 중량의 40% 이상이어야 한다. 시용법은 토양과 작물의 조건에 따라 다르며 특히 비료의 특성에 따라서 시용하여야 한다.

제4종 복합비료는 질소·수용성 인산·수용성 칼리 중 2종 이상의 주성분 합계량이 10% 이상 함유되고, 고토·망간·붕소·철·몰리브덴·아연 중 5종 이상을 보증하는 비료이며 시용법은 앞의 것과 비슷하다.

논과 밭 토양의 종류는 많고 그 토양의 이화학적 성질도 다르다. 밭은 거의 산성토양이고, 논은 저수확답과 다수확답으로 나누며, 특히 저수확답은 노후답 또는 특수성분 결핍답·사력답(砂礫畓)·중점토(重粘土)·습답(濕畓)·퇴화염토(退化鹽土)·특이산성토(特異酸性土)·광독지(鑛毒地)·염해지(鹽害地) 등으로 분류된다.

작물을 재배하는 데는 토양의 조건이 중요하기 때문에 알맞은 조건으로 개선해야 한다. 토양의 조건, 작물의 품종 및 그에 맞는 비료를 합리적으로 시용할 때 작물의 생산량을 높일 수 있다.

근래에는 경토배양(耕土培養)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객토·유기물·석회 등을 넣어 토양 개량에 힘쓰고 있으며, 지력 증진의 한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다.

비료는 작물 생육의 필수영양분을 공급하는 농업생산자재로서 가장 중요한 물질이며 식량 자급면에서 다른 자재보다 그 비중이 크다.

따라서 비료를 사용할 때는 먼저 작물의 종류·기상·토양 등 재배조건에 따라 가장 적합한 비료를 합리적으로 시용함으로써 작물의 수량을 높일 수 있다. 최근에는 농업기술의 발달로 점차 3요소와 미량 원소의 시비량이 증가하는 경향이기 때문에 비료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

참고문헌

『한국민속대관』 5(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0)
『농수산고문헌비요』(김영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2)
『한국농업기술사』(한국농업기술사발간위원회,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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