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귀명(趙龜命: 1693~1737)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석여(錫汝) · 보여(寶汝), 호는 건천자(乾川子) · 동계(東谿)이다.
『건천고(乾川藁)』는 총 8책 가운데 1책, 2책, 3책, 6책, 8책의 5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이다. 각 책의 표지에는 저작 기간이 명기되어 있는데, 1책은 1712년(숙종 38)부터 1715년까지, 2책은 1715년부터 1719년까지, 3책은 1719년, 6책은 1726년(영조 2)부터 1730년까지, 8책은 1735년부터 1736년까지의 저작을 엮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1720년부터 1725년까지의 저작이 4책과 5책에 수록되어 있고, 1731년부터 1734년까지의 저작이 7책에 수록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일본으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편찬 및 필사 시기는 미상인데, 다만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수차례에 걸쳐 작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1책에는 1712년 조귀명의 20세 때 글이, 8책에는 조귀명이 죽기 1년 전인 1736년 글이 수록되어 있다.
문집으로서 체재가 없고, 작품의 창작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엮어 놓았다.
1책은 「유모이(乳母李)」를 시작으로 설 1편, 시 6수, 기 4편, 제문 3편, 찬 7편, 소 1편, 논 3편, 의 1편, 서 4편, 유사 1편, 서 2편, 명 2편, 변 1편, 애사 1편, 가 1편, 전 2편이 수록되어 있다. 2책은 「정백극단우언(鄭伯克段于鄢)」을 시작으로 표 1편, 제문 7편, 기 1편, 문 3편, 행장 1편, 서 5편, 찬 6편, 서 6편, 만 1편, 묘지 3편, 제 14편, 불서 1편, 명 1편, 발 1편이 수록되어 있다. 3책은 「조고동악부군행장(祖考東岳府君行狀)」이 수록되어 있다. 6책은 「우여태우선사서(又與泰宇禪師書)」를 시작으로 서 12편, 기 16편, 논 1편, 유사 1편, 서 4편, 부 1편, 발 2편, 제문 3편, 행장 1편, 묘지 3편, 제 16편, 설 1편, 전 1편, 명 3편, 가 2편, 애사 1편이 수록되어 있다. 8책은 「박원군묘지명(朴原君墓誌銘)」을 시작으로 묘지 2편, 문 1편, 묘문 3편, 기 4편, 서(序) 3편, 제 11편, 설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조귀명의 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기재한 각종 평점(評點)과 비평(批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평점 및 비평은 문예 작품에 대해 비평가가 자신의 감상과 비평을 가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책에는 권점(圈點) · 수비(首批) · 미비(眉批) · 방비(旁批) 등 다양한 형식의 비평이 가해져 있다. 이 책의 비평 작업에 참여한 사람은 당대의 한문 산문 작가 또는 문예비평가로 저명한 인물들로, 이천보(李天輔), 임상정(林象鼎), 이정섭(李廷燮), 임성주(任聖周), 송요화(宋堯和) 등이다.
『건천고』는 1741년 조귀명의 문집 『동계집(東谿集)』이 간행되기 이전의 초고본으로,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작품 곳곳에 크고 작은 수정 표시가 남아 있어, 이를 통해 조귀명이 문장을 어떻게 개작했는지의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이천보 · 임상정 등 당대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비평가들이 남긴 평점과 비평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한문 산문 비평사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